감정에도 후불제가 있다

3장. 가짜 미소가 나를 갉아먹기 시작할 때

by고금

부당한 주말 근무를 웃으며 받아들일 때도,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 헛웃음을 지을 때도, 심지어 내 잘못을 지적받는 무거운 순간에도 나는 늘 스스로에게 같은 변명을 댔다.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서로 기분이 상하면 안 되니까.’


오랫동안 나는 이것이 배려라고 믿었다. 상대의 감정에 주파수를 맞추고 내 감정을 한 발 뒤로 물리는 것이 성숙한 어른의 태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배려가 아니라 이타심으로 정교하게 위장한 ‘선택적 방치’였다.


누군가 무례한 말이나 부당한 요구를 던질 때조차 나는 화를 내기보다 타인의 입장을 먼저 변호했다.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은 아닐 거야.’


그렇게 상대에게는 수십 가지 너그러운 변명을 만들어 주면서도 정작 상처받은 나에게는 아주 차갑게 대했다. 가장 오랫동안 내 감정을 묵살하고 무효로 만든 가해자는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눈앞의 뻘쭘한 공기를 피하고, 껄끄러운 대화를 넘기고, 관계가 틀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삼킨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결제가 나중으로 미뤄졌을 뿐이다. 그 후불제 청구서의 항목들은 참담했다.


이유 없이 쌓이는 만성적인 피로,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향하는 날 선 짜증, 밤마다 어두운 방에서 되감는 후회.


남의 기분에만 24시간 안테나를 세우고 살다 보니 정작 나라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분노하는지조차 희미해져 버린 ‘자아의 파산’ 상태였다.


그렇다고 웃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짓는 웃음, 타인의 호의에 화답하는 미소는 내가 지키고 싶은 다정함이다. 문제는 내가 불편한 순간조차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가장 쉬운 수단으로 가짜 미소를 꺼내 썼다는 데 있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내 마음을 무시하면서까지 웃어야 한다고 믿었던 그 습관이었다.


낮에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어넘기고 집에 돌아와서야 그날의 짜증과 억울함을 쏟아내고, 밤이 되면 또다시 ‘그때 왜 웃었을까’를 되감았다.


나는 갈등을 없앤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감정을 나중으로 미뤄두고 있었을 뿐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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