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가짜 미소가 나를 갉아먹기 시작할 때
세상에는 나처럼 갈등을 피하려다 뼈아픈 헛발질을 해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번엔 층간소음 문제로 윗집에 항의하러 갔던 날의 일이다.
며칠째 이어지는 쿵쾅거리는 소리에 인내심은 바닥이 났고 마침내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오늘은 절대 그냥 안 넘어간다. 경찰을 부르든 소리를 지르든 단단히 엎어버리겠다’고 비장하게 다짐하며 계단을 쿵쾅쿵쾅 밟고 올라갔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고 머릿속으로는 논리적이고 단호한 항의 멘트를 수십 번 연습했다.
마침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이 열렸다.
그런데 윗집 주인을 마주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내 뇌의 회로는 또다시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버렸다. 나를 향해 집주인이 활짝 웃으며 “아유, 오늘 집에 손님이 좀 와서요~”라며 되지도 않는 변명을 늘어놓더니 심지어 한술 더 떠 뻔뻔한 제안을 던진 것이다.
“혹시 두 분 술 좋아하세요? 나중에 같이 한잔해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분명 항의를 하러 올라왔는데 대화의 흐름은 어느새 회식 제안을 받은 사람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이 진심으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건지 원래 이렇게 뻔뻔한 사람인지 분간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그다음이었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그 황당하고 날 선 공기를 견디지 못한 내 입술은 정색은커녕 반사적으로 씰룩거리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는 ‘지금 장난하냐’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대답은 참으로 비루하고 싹싹했다.
“아, 네… ㅎㅎㅎ 저희는 술을 안 먹어서요…. 그래도 좀 조용히 부탁드려요.”
따지러 올라가서 윗집의 술자리 초대를 정중하게 거절하고 내려온 꼴이라니.
애초에 묻는 말에 대답을 해줄 의무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잔뜩 얼어붙은 얼굴에 억지웃음까지 덕지덕지 붙인 채, 나는 그 멍청하고 친절한 대답을 남기고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왔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내가 돌아오고 나서도 윗집의 소음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이어졌다.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서 읽어주지 않는다.
내가 보여준 반응을 보고 판단할 뿐이다.
속으로 아무리 분노해도 겉으로 웃고 있으면 상대는 그 웃음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내가 불쾌해하면서도 웃어주면 상대는 ‘저 사람은 괜찮아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괜찮아서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전달한 것은 ‘화’가 아니라 ‘괜찮다’는 신호였다.
사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미소를 만만함으로 읽는 것은 아니다. 배려를 배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경계를 자주 넘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다. 그들은 상대가 불쾌했는지보다 자신이 제지당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 같다.
한 번 선을 넘었는데 별다른 저항이 없다. 두 번 선을 넘었는데도 웃으며 넘어간다. 그러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아주 단순한 공식이 만들어진다.
‘여기는 이 정도도 괜찮은 사람.’
정확히 말하면 착한 사람이 아니라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들은 내 성격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디까지 받아주는지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떤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상대의 반응을 빨리 알아챈다. 모두에게 함부로 구는 것이 아니다. 한 번 찔러보고, 웃어주면 한 번 더 찌르고, 또 웃어주면 그때부터는 아예 거리낌이 없어진다. 늑대가 사슴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가 없는 곳을 찾아 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
그제야 알았다. 사람들은 내 속마음을 보고 선을 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어디까지 허용하는지를 보고 선을 넘기도 한다는 것을.
웃음은 예의일 수는 있어도 경계는 될 수 없다. 속으로 아무리 화가 나도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경계는 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그날 이후 나는 억지로 웃기 전에 한 번씩 생각한다. 지금 내가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를 불편하게 만든 상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