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웃음이 지켜준 건 상대였지, 내가 아니었다

3장. 가짜 미소가 나를 갉아먹기 시작할 때

by고금

어느 순간부터 억울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동안 웃으며 넘긴 일들이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던 걸까.

그때는 분명 별일 아닌 것처럼 지나갔는데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불쑥 그 장면들이 떠올랐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희미해져도 그 말을 듣고 바보같이 웃고 있던 내 모습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했다.


‘나는 왜 그때 웃었을까.’


나는 웃으면 상황이 끝난다고 믿었다. 부드럽게 웃고 넘어가면 괜한 갈등도 안 생기고 관계도 무난하게 이어질 테니까. 하지만 내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는 순간 상대는 안심했다.


‘아, 이 정도 말은 괜찮았구나.’

‘불쾌하지 않았네.’


내가 웃고 있으니 상대는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사실을 돌아볼 이유가 없었다. 나는 갈등을 피했다고 안도했지만 실상은 상대가 감당해야 할 몫의 불편함까지 꾸역꾸역 대신 떠안고 있었던 셈이다.


더 분통이 터지는 건 그 순간조차 내 관심은 나보다 상대에게 향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처를 받고도 상대의 입장을 먼저 변호했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억지로 이유를 찾아주고 행여나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전전긍긍했다.


그렇게 나는 이상한 재판을 반복했다. 상대에게는 온갖 참작 사유를 만들어주면서 정작 내 감정에는 가차 없이 유죄를 때렸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그냥 웃고 넘길 수도 있잖아.’


내가 그렇게까지 내 감정을 깎아가며 지켜주었던 사람들은 내가 불쾌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내가 친절하게 웃어주었으니까.


내 미소는 껍데기뿐인 관계를 지켜주었을지 몰라도 나를 편하게 해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상대는 이미 까맣게 잊어버렸을 찰나의 장면을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수십 번씩 되감으며 끝없이 자바카라했다.


좋은 관계란 내가 조금씩 참으면 유지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한 사람만 계속 감정을 뒤로 미뤄야 유지되는 관계라면 그것을 정말 건강한 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웃을 때마다 편해진 사람은 늘 상대였고 불편해진 사람은 언제나 나였다.


그제야 알았다.


배려라는 이름으로 내가 삼켜온 것들은 결국 나를 가장 가혹하게 방치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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