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불쾌해도 웃고, 잘못해도 웃었다
슬롯생활을 시작하고 내가 가장 먼저 걸린 병은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병’이었다.
누군가와 단둘이 엘리베이터에 남았을 때, 회의실에서 모두가 입을 다문 몇 초 동안, 전화를 걸어 상대방이 받기 전의 짧은 정적까지도 나는 이상하리만큼 불편했다.
그 뻘쭘한 정적이 흐를 때면 나는 뇌의 통제를 벗어나 반사적으로 입꼬리부터 끌어올리고 보는 슬픈 조건반사에 시달렸다. 어떻게든 이 텅 빈 공간을 부드러운 윤활유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었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침묵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일 뿐인데 우리는 그것을 마치 사고가 난 것처럼 허둥지둥 수습하려 든다.
최근 유행하는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첫 만남에서 긴장한 출연자들이 쉼 없이 아무 말이나 이어가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별 의미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 덧붙이고, 혼자 웃고, 상대의 작은 반응에도 과하게 리액션을 한다. 화면 밖에서는 ‘왜 저렇게까지 과장되게 굴지?’ 싶지만 막상 그 자리에 서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아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침묵이 주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신입 기자 시절, 이 강박증이 대참사를 일으킨 적이 있다. 당장 속보를 써야할 사고가 발생해 담당 선배에게 급하게 보고 전화를 하던 날이었다. 선배가 전화를 받는 순간 잔뜩 얼어붙은 내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버렸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몇 초 동안 말이 끊겼고, 그 찰나의 침묵이 나에게는 지옥 같았다.
그 결과 나는 이상한 선택을 했다. 압도적으로 뻘쭘한 공기를 어떻게든 메워보려고, 나도 모르게 가식적인 억지웃음을 잔뜩 섞어가며 보고를 이어간 것이다.
“아... 하하... 지금 ○○에서 사고가 났는데요…”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모습이다. 심각한 사고를 보고하는 사람이 대체 왜 웃는단 말인가.
하지만 당시의 나는 사고가 우스워서 웃은 것이 아니었다. 선배에게 싹싹하게 보이려 치밀하게 계산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 숨 막히는 몇 초의 공기를 견딜 수 없었을 뿐이다.
사람은 즐거울 때만 웃는 것이 아니다. 당황하거나 불안하거나 압박을 받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내보내며 긴장을 완화하려 한다.
내 헛웃음 역시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뻘쭘함과 불안을 감추기 위해 오작동한 웃음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돌아온 선배의 대답에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야, 지금 심각한 사고가 났는데 넌 왜 그렇게 실실 웃으면서 보고하냐? 좀 그렇다.”
황급히 전화를 끊고 몰려오는 수치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어색함을 덮으려 억지로 흘린 웃음이 보고의 진중함을 완전히 박살 내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 병은 그날 이후에도 쉽게 낫지 않았다.
미용실에서 처음 보는 디자이너와 거울을 통해 눈이 마주쳤을 때, 택시 기사님이 불쑥 난해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조차 나는 습관적으로 옅은 웃음을 띠었다.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순전히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해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헬스장에 가서도 기구를 쓰다가 다른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괜히 어색해서 웃는다.
특히 슬롯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은 셀 수 없이 많다. 웃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고, 내가 슬롯성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괜히 말을 하나 더 보태고 웃음까지 얹는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피에로를 자처한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견디지 못했던 그 몇 초의 침묵을 상대방은 거의 기억하지도 못한다. 내가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메우지 않아도 되는 빈자리였던 셈이다.
세상 모든 상황에 억지로 코미디 프로그램 같은 가짜 웃음 트랙을 깔아둘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제는 나도 모든 침묵을 웃음으로 메우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굳이 입꼬리를 올리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는다.
그런데 이것도 처음에는 꽤 어색했다. 웃지 않고 있으면 내가 너무 무뚝뚝해 보이는 것 같았고, 상대가 불편해하는 건 아닐까 괜히 신경이 쓰였다. 입꼬리를 올리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조차 나에게는 하나의 연습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그 몇 초의 정적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침묵을 꼭 누군가의 웃음으로 메워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