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을 피하려다 나를 공격하게 된 아이러니

2장. 불쾌해도 웃고, 잘못해도 웃었다

by고금

우리가 밖에서 타인의 무례함을 마주했을 때 억지 미소로 상황을 덮어버리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냥 피곤해서다. 너무 피곤해서.


언성을 높여 시시비비를 가리고 내 불쾌함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은 생각만 해도 진이 빠진다. 그래서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으면서도 겉으로는 실실 웃고 만다. 한 번 눈 딱 감고 넘어가면, 적어도 눈앞의 껄끄러운 공기만큼은 모면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내가 끝낸 건 갈등이 아니라 그 순간의 장면뿐이었다.


밖에서 꿀꺽 삼켜버린 분노와 수치심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마음속 어딘가에 시커멓게 똬리를 틀고 있다가 결국 가장 만만한 출구를 찾아 터져 나온다. 그 억눌린 감정의 첫 번째 희생양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들이었다.


밖에서 하루 종일 눈치를 보며 억지웃음을 팔고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팽팽했던 긴장이 툭 풀렸다. 그때 엄마가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


“밥은 먹었어? 찌개 데워줄까?”


하루의 피로를 녹여주는 평범하고 따뜻한 그 말에, 내 입에서는 전혀 엉뚱한 가시가 튀어나왔다.


“아, 그냥 됐어, 됐어!”


말을 내뱉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가 무엇을 잘못한 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하루 종일 밖에서 하지 못했던 짜증을 가장 안전한 사람에게 대신 쏟아내고 있었다.


흔히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족이나 연인에게 쏟아내고는 “가장 편한 사이라서 그랬다”며 변명하곤 한다. 사실 그 말은 절반만 맞다. 편해서가 아니라 안전해서다. 밖에서 화를 냈다가는 관계가 틀어질 수도 있고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그럴 걱정이 덜하다. 우리의 무의식은 너무도 교활하게 계산한다.


‘이 정도 짜증은 내도 이 사람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야.’


그 믿음을 담보로 우리는 가장 소중한 사람을 가장 만만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를 함부로 대하고 깎아내리는 생판 남에게는 내 가장 다정하고 싹싹한 미소를 갖다 바치고, 정작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진짜 내 사람에게는 밖에서 묻혀온 뾰족한 가시를 찔러 넣는 것이다. 밖에서의 싸움을 피하려다 내 일상과 가족 간의 진짜 평화를 내 손으로 깨뜨려버리는 이 모순.


하지만 진짜 비극은 밤이 되면 시작된다. 불을 끄고 누우면 낮의 상황이 선명하게 재생되며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마디 했어야 했는데.’

‘거기서 왜 바보같이 맞장구를 쳤을까.’

‘왜 또 참았을까.’


나를 후려친 사람은 지금쯤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잊고 편히 잠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만 뜬눈으로 누워 끝난 장면을 수십 번 되감는다. 낮에는 피했던 싸움을 밤이 되어서야 혼자 계속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화살의 방향이 바뀐다.


‘왜 맨날 이럴까.’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했을까.’


결국 그날 밤, 내게 가장 날카로운 비난을 쏟아부으며 나를 오랫동안 공격한 사람은 무례했던 가해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다음 날 부은 얼굴로 거울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갈등을 피해서 평화를 얻은 것이 아니었다.


밖에서 벌어졌어야 할 싸움을 굳이 내 집으로, 내 마음속 한가운데로 고스란히 끌고 들어왔을 뿐이었다. 눈앞의 불편함은 잠깐 피했지만 그 무거운 대가는 가족이 치르기도 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내가 치르고 있었다.

갈등은 피할 수 있어도 감정은 피할 수 없다.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가장 안전한 사람을 찌르고 돌아와 결국 내 마음을 난도질한다.


내가 밖에서 끝내지 못한 싸움은 결국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거쳐 마지막에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돌아왔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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