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타스(Vanitas)의 상징
30년쯤 전이었을 것이다. 이 도판을 산 것은.
비싼 물건이 아니었다. 아마 커피 몇 잔 값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값싼 종이 한 장이 그날 내 눈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도판 상단에는 'MÉLANÉSIE. / MELANESIA'라고 적혀 있다. 왼쪽에는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두개골이 측면으로, 오른쪽에는 호주 아넘랜드 원주민의 두개골이 정면으로 그려져 있다.
이 판화는 19세기 프랑스의 지리학자이자 탐험가 도메니크 드 리엔지(Domeny de Rienzi)가 펴낸 오세아니아 관련 박물학 서적에 실린 도판이다.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던 유럽인들이 그 땅의 지리와 식생뿐 아니라 원주민의 신체까지 과학의 틀 안에서 분류하려던 시대, 체질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그림들이 대량으로 그려졌다. 두상의 굴곡, 봉합선, 안와의 깊이까지 정밀하게 새긴 에칭 기법은 그 시대 유럽 학문이 인간을 얼마나 냉정하게 관찰 대상으로 다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태생부터 온전히 과학적인 도판이다. 낭만이나 상징을 위해 그려진 그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인류학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그림 앞에서 멈춰 섰고, 결국 사고 말았다.
그때는 내가 왜 이 이미지에 끌렸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냥 뭔가에 홀린 듯 지갑을 열었을 뿐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때 내가 반응했던 것은 이 그림의 인류학적 의미가 아니었다. 두개골이라는 형태 자체가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다른 의미, 바니타스(Vanitas)의 상징이었다.
두개골은 서양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상징으로 쓰여왔다.
햄릿이 궁정 광대 요릭의 해골을 손에 들고 독백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한때 왕을 웃기던 재치 있는 광대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 텅 빈 뼈 하나로 남는다. 신분도, 재치도, 살아 있을 때의 그 모든 개성도 두개골 앞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어진다.
이 판화 속 두 개의 두개골도 원래는 서로 다른 대륙에서 살았던, 분명 서로 다른 삶과 이야기를 가졌을 두 사람의 것이다. 하지만 종이 위에 남은 것은 그저 뼈의 형태일 뿐이다. 삶이 지나가고 나면 결국 하나의 물질로 환원된다는 것. 신분도, 인종도, 시대도 다 지워지고 남는 것은 같은 모양의 뼈라는 것.
아마 그날 내 지갑을 열게 한 것은 바로 그 감각이었을 것이다. 인류학이라는 냉정한 틀 안에서 그려진 그림인데도, 그 안에 삶과 죽음에 대한 아주 오래된 질문이 숨어 있었다.
이 판화를 살 때 나는 인류학 도판을 모으려던 것이 아니었다. 지리학 서적의 삽화를 수집하려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커피 몇 잔 값짜리 종이 한 장이,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있던 죽음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건드렸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감각을 따라간 것이 이 컬렉션의 시작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모아온 것들 중 많은 수가 이런 식으로 내게 왔다. 원래의 목적이나 분류와는 상관없이, 어떤 이미지가 가진 다른 의미에 이끌려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컬렉터가 저지르는 가장 정직한 외도인지도 모른다.
"나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오래, 더 집요하게 물을 수 있었다."
40년 경력의 고지도 수집가, 정작 겁이 많아서 더 집요하게 팠다. 국내 최초, 귀신을 '생성 구조'로 해부한 인문 비평서.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는다. 인간이 공포를 설계하는 방식을 지도처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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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무당'이 있지만, 무속을 말하는 바카라이 아니다. 미신을 믿느냐고 묻지 않는다. '판단 없는 위로자'가 시대마다 어떤 얼굴로 돌아오는지를 추적한다. 무당의 바카라이 아니라, 위로 슬롯의 바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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