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의 외도〉 원칙을 무너뜨리는 Guilty Pleasure
나는 한국 근대사와 관련된 종이 자료를 수집한다. 옛 사진과 서적, 엽서, 그리고 한국과 관련된 고지도가 주요 대상이다. 수집의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한국과 관련되어 있을 것, 그리고 종이로 된 자료일 것. 그래서 외국의 자료나 한국과 관계없는 물건에는 웬만하면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수집을 하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가는 자료가 있다. 분명 내가 정해놓은 수집의 범위 밖에 있는데도 자꾸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그냥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제작 연도를 찾아보고, 자료의 상태를 살펴보고, 가격을 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에는 구입한다. 나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Guilty Pleasure, 수집가로서 느끼는 작은 죄바카라감이다.
예전에 나는 이런 자료들을 모아 〈컬렉터의 외도〉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한국 자료를 수집하던 컬렉터가 자신의 원칙에서 벗어나 다른 시대와 다른 지역의 자료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을 ‘외도’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수집가에게는 나름의 규칙이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 규칙을 가장 쉽게 무너뜨리는 것은 논리보다 욕망이다.
이번에 소개할 파리 지도 역시 그런 외도의 결과다. 지도 상단에는 NOUVEAU PARIS MONUMENTAL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1900년 무렵의 파리를 한 장의 종이 위에 펼쳐놓았다. 센강을 중심으로 파리의 거리와 광장, 공원과 주요 건축물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으며, 건물들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실제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은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에펠탑을 비롯해 당시 파리를 대표했던 건축물들이 지도 곳곳에 등장하고, 붉은색으로 표시된 이동 경로는 여행자가 파리를 어떻게 돌아보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안내한다.
그래서 이 지도는 단순히 ‘파리의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로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한 시대의 사람들이 파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장의 시각 기록에 가깝다. 도시의 모든 것을 똑같이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관광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소를 선택하고 강조한다. 어떤 건축물은 크게 그려지고, 어떤 장소는 작게 처리되거나 아예 사라진다. 지도는 도시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선택하고 편집한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지도를 구입한 이유를 그렇게 거창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역사적 가치도 있고, 지도 제작 방식도 흥미롭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로 넘어가는 파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처음 이 지도를 보았을 때의 감정은 훨씬 단순했다.
그냥 좋았다. 그리고 갖고 싶었다.
컬렉터에게 이 두 가지 감정은 상당히 위험하다. 수집의 원칙을 세워놓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이는 자료를 만나는 순간 그 원칙은 흔들린다. ‘한국 자료가 아니잖아’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들여다보고,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자’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손에 넣는다.
어쩌면 이것이 컬렉터의 외도인지도 모른다. 수집은 합리적인 기준으로 시작하지만, 모든 수집품이 합리적인 이유로 컬렉션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종이의 질감 때문에, 오래된 인쇄의 색감 때문에, 낯선 시대의 풍경 때문에,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끌림 때문에 자료를 수집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한국이라는 장소만을 수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것은 시간이 종이 위에 남겨놓은 흔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옛 사진에도, 오래된 엽서에도, 고지도에도 그 흔적은 남아 있다. 그렇다면 파리의 지도에 마음이 끌린 것도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수집가에게는 여전히 죄바카라감이 남는다. 이것은 내가 정한 수집의 범위를 벗어난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자료들을 정식 컬렉션의 일부라기보다, 잠시 마음이 흔들려 데려온 외도한 자료라고 부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 죄바카라감 때문에 더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집에는 원칙이 필요하지만, 수집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욕망이다. 원칙만 있다면 컬렉션은 깔끔해질 수 있지만, 욕망이 없다면 새로운 자료를 발견하는 즐거움도 사라진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료를 보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건 내 수집 대상이 아닌데, 왜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아마 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면 이미 늦었을 것이다.
컬렉터의 외도는 그렇게 시작된다.
"나는 귀신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오래, 더 집요하게 물을 수 있었다."
40년 경력의 고지도 수집가, 정작 겁이 많아서 더 집요하게 팠다. 국내 최초, 귀신을 '생성 구조'로 해부한 인문 비평서. 있는지 없는지를 묻지 않는다. 인간이 공포를 설계하는 방식을 지도처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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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무당'이 있지만, 무속을 말하는 바카라이 아니다. 미신을 믿느냐고 묻지 않는다. '판단 없는 위로자'가 시대마다 어떤 얼굴로 돌아오는지를 추적한다. 무당의 바카라이 아니라, 위로 슬롯의 바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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