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러를 닮은 사슴벌레 그림 앞에서. 컬렉터의 외도

컬렉터의 외도

뒤러를 닮은 사슴벌레 그림 앞에서


나는 한국과 관련된 종이 자료만 수집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사진과 엽서, 지도, 오래된 바카라과 인쇄물. 오랫동안 수집을 이어오면서 내 컬렉션의 범위는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한국이라는 장소와 그곳의 역사, 그리고 종이라는 매체 안에서 자료를 발견하고 모으는 일. 그것이 내가 정해놓은 수집의 질서였다.

그런데 가끔 그 질서가 무너질 때가 있다. 한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고, 결국 그것을 구입하고 마는 순간이다. 나는 그런 수집을 '컬렉터의 외도'라고 부른다.

외도에는 쾌락이 있다. 오랫동안 지켜온 원칙을 잠시 벗어났다는 해방감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정한 수집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묘한 죄바카라감도 남는다. 그래서 이런 물건들은 내게 죄바카라감을 동반한 즐거움, Guilty Pleasure다.

오늘 소개할 작품이 바로 그런 외도의 결과물이다.



뒤러를 닮은 사슴벌레

작은 액자 안에 사슴벌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림은 동물의 뿔을 얇게 펴서 만든 재료 위에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표면에는 세월의 흔적처럼 미세한 균열이 있고, 정확한 제작 연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처음 이 그림을 만났을 때 적어도 200년은 넘은 물건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림 속 사슴벌레의 형태였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가 1505년에 그린 <사슴벌레(Stag Beetle)>와 구도부터 색감까지 매우 닮아 있었다. 곤충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세운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고 하는, 뒤러의 대표적인 자연 습작 중 하나다. 이 도상은 이후로도 여러 화가들에 의해 오랫동안 모사되어, 16세기 후반까지도 비슷한 사슴벌레 그림들이 계속 그려졌다고 전해진다.

내가 소장한 그림이 그 계보의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뒤러의 원작을 직접 모사한 것인지, 널리 유통되던 도상을 참고해 훗날 누군가 다시 그린 것인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림 속 사슴벌레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는 것. 내가 오래전부터 좋아해 온 곤충이었으니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미 수집가로서의 경계를 넘고 있었다.


K-20260921-104531.jpg



가게가 사라지고, 인연이 끊어지던 시간

한국 근현대사 자료와 지도를 수집한 지 어느덧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수집하는 방법도, 그 방법을 둘러싼 사람과 공간도 많이 달라졌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자료를 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가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고지도 전문점이나 오래된 바카라을 취급하는 헌바카라방 문을 열 때마다 늘 설렘이 있었다. 무엇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게 주인과 나누는 대화, 물건을 직접 만져보는 감각, 서가 사이에서 우연히 무언가를 발견하는 순간까지, 그때의 수집에는 자료뿐 아니라 사람과 공간과 기다림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익숙한 가게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고서점 주인 중에는 세상을 떠난 이도, 가게를 아들에게 물려준 이도 있다. 대를 이어 가게를 맡은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감성으로 손님을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5년쯤 전에는 가끔 방문하던 사이트 하나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고 싶은 물건을 목록까지 만들어두었던 곳이었는데, 20년 넘게 써온 이메일로 연락해봐도 답이 없었다. 얼마 전에는 전시 소식을 전하려 오래 알고 지낸 한 컬렉터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을 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검색해보니 이미 고인이 된 뒤였다. 나를 아껴주던 분이었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수집가로서의 삶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아들에게라도 연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생전에 운영하던 홈페이지도 함께 멈춰버려서, 그분과의 관계는 그렇게 영영 끊어지고 말았다.

수집을 하면서 만난 인연은 물건만큼이나 소중했다. 그런데 사람은 떠나고, 가게는 사라지고, 홈페이지는 닫힌다. 시간은 자료만 낡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집가를 둘러싼 관계와 기억의 통로까지 조금씩 지워버린다.


어느 헌바카라방에서

이 사슴벌레 그림을 만난 곳도 그런 흔한 외국의 헌바카라방이었다.

한국 관련 자료나 지도는 이런 곳에서 쉽게 나오는 물건이 아니다. 그래도 특별한 기대 없이 습관처럼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것이 이 작은 그림이었다. 얇게 편 동물 뿔 위에 그려진 사슴벌레, 미세한 균열이 있는 표면. 오래된 물건이라는 인상이 강했고, 무엇보다 낯익은 화가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형태였다.

혹시 판매자가 그 가치를 알고 비싼 값을 부르는 건 아닐까 싶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뒤러라는 화가를 아십니까?"

판매자는 그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에게 이 그림은 그저 작은 골동품 하나였을 뿐, 크기와 상태에 맞는 값을 제시했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 그림을 구입했다.

그때가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다.


K-20260921-104540.jpg



진짜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

가끔 사람들은 묻는다. 이 그림이 진짜 뒤러의 작품이냐고.

나 역시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뒤러의 원작인지, 그것을 모사한 것인지, 혹은 널리 유통되던 도상을 참고한 다른 시대의 작품인지는 전문적인 감정과 비교 연구가 필요한 문제다. 오래된 작품일수록 제작자와 연대, 소장 이력을 확인하는 일이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사실이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 그림은 내가 30년 가까이 바라보며 즐거움을 얻은 물건이다. 처음 만났던 헌바카라방의 풍경, 뒤러의 이름을 꺼내며 느꼈던 짧은 긴장감, 결국 그림을 사서 돌아서던 순간까지 함께 남아 있다. 그림은 이제 단순한 사슴벌레 그림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수집의 시간 그 자체다.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그림을 바라보며 충분히 즐거웠다면 그때 지불한 값의 가치는 이미 다 뽑은 셈이 아닐까.



컬렉터의 외도는 계속된다

수집은 절제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욕망의 행위다. 무엇을 모을지 정하는 일은 무엇을 모으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엄격한 기준을 세워도, 예상하지 못한 물건 앞에서 그 기준은 흔들린다.

나에게 이 작은 사슴벌레 그림은 그런 흔들림의 기록이다. 한국 근현대사 자료와 지도라는 오랜 수집의 길에서 잠시 벗어난 외도. 그 외도에는 지금도 작은 죄바카라감이 남아 있지만, 그 죄바카라감만큼이나 분명한 즐거움도 함께 남아 있다.

나는 앞으로도 한국 관련 종이 자료를 중심으로 수집을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또다시 마음을 빼앗기는 물건을 만난다면, 아마 이번에도 쉽게 지나치지는 못할 것 같다. 수집가의 욕망은 언제나 조금 늦게 자신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구입한 물건은 훗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원칙을 지키지 못했지만,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잖아요."



펀딩 진행 중인 바카라 소개


https://tumblbug.com/portrait_of_ghost


월요일 연재
이전 02화컬렉터의 외도 — 두 개의 두개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