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덜너덜합니다
이번에도 솔직히 기대했다.
정보가 없는 건 아쉬웠다.
수상작과 심사평과 심사위원에 대해서 읽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알았다면 달랐을까, 그렇다고 믿고 싶다.
또다. 아직도 될 거라고 믿는다.
이쯤 되면 순진한 게 아니라 고집이 아닌가 싶어서, 혼자 웃음이 났다. 웃으면서도 믿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찾는 희망 같은 게 아니다.
내 인생은, 어쩌면 온통 그런 식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조금 특이하게도 희망 속에 살았다.
남부럽지 않게 가난하게 살 때도 부모님은 늘 내 유학에 대해 고민하셨다.
당장 밥 먹을 걱정을 해야 하지만 굉장히 신중하게 나라를 고르셨다.
덕분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쓰는 그 방 한편에 세계지도를 붙이고, 지구본을 굴리면서
같이 고민할 수 있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당연히 갔을 리는 없다.
내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된 때부터 엄마는 내가 작가가 될 거라고 늘 말씀하셨다.
이유는 모르겠다. 엄마의 꿈이 작가였던 것도 아니고,
이름이나 쓰는 아이가 뭘 쓰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고
나는 내가 자라면 당연히 어른이 되듯이 작가가 되는 줄 알았다.
현실을 깨달은 건, 대학 진학 무렵, 내 글쓰기가 꽤 평범하다고 느꼈을 때부터였다.
그래도 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넌 작가가 될 거야.
이번 공모전은 내가 낸 중에 꽤 큰 편에 속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 기준에 크다는 의미는 이래저래 자잘한 상을 꽤 준다는 거였고,
행복 회로를 돌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는 소리다.
발표 날 나는 평소처럼 일을 했다.
평소처럼 점심을 먹었고, 평소처럼 핸드폰을 뒤집어 놓았다. 평소인 척했다.
새로고침은 평범하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손가락이 고장 난 게 아닐까 싶게 새로고침을 누르던 손길이 멈췄다.
명단이 떴고,
없었다.
이름도, 제목도 없었다.
몇 번 더 새로고침을 눌렀는데, 새로고침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날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배가 고픈 건 아니었다. 그냥 열었다.
맨 안쪽, 오른쪽 음료칸에서 박카스가 나왔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박카스. 유통기한은 한참 전에 끝나 있었다.
뚜껑을 땄다.
털어 넣었다.
빈 병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한참 서 있었다.
너덜너덜했다. 이상하게도, 너덜너덜해질수록 기분이 좋았다.
엄청나게 가라앉는데, 그게 좋았다.
바닥까지 내려가는 중인데 바닥이 있다는 게 안심이 되는 사람처럼.
가라앉으면서 좋은, 이 이중적인 마음은 뭘까.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괜찮았다.
웃었고, 재미있었고, 참았다.
당연히 유학을 못 갈 줄 알았고,
당연히 쉽사리 작가가 되지 못할 줄도 알았다.
그런 사람이 제대로 무너져 보고 있다.
무너지는 게 이렇게 시원한 일인 줄 몰랐다.
이 공모전에는 심사평이 없었다.
된 사람이 왜 붙었는지도 없었다.
알 수 없었다. 붙으면 붙었다, 아니면 아니다. 그게 전부였다.
뭐가 좋다, 아니다 그 말이,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괜히 볼멘소리가 나오려 했다.
심사위원도 말하는 연습을 좀 하셔야겠다.
좋은 꿈 꾸면 말해 달라고 남편에게 말했었는데
남편은 꿈을 꾸지 않았고
나는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
분리수거할 때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박카스는 한 병은 보았을 것이다.
박카스는 몇 병 사다 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