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만, 한 푼만 줍쇼

71,400번이라도 고개를 숙일 테요

by서재하


오늘도 발표를 보았다.


스크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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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만 들어찬 화면.
이렇게 여백이 많은데

내 이름 하나 들어갈 자리가 그렇게 없는 건가.

내 글을 못 알아봐 주었다거나

평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빈 공간에

내 이름 하나 없는 것은 퍽

서러워지려고 한다.

나는 살면서 딱 한 명을 미워해봤다.


사실 나도 모르게 미워했는지는 몰라도
기억에 남는 것은

딱 한 명.

유행이라도 따르려는 듯

아이들이 왕따를 시킬 때도 밉진 않았다.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거야, 내가 아니면 자기가 될까 봐 두렵겠지 싶었다.

나 모르게 다른 사람을 만나놓고는
사실 바람이 누구냐 따지자면 네가 바람이지 하던
그 남자도 밉지는 않았다.

주먹은 냅다 날려주고 싶었지만
누구 말마따나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닐 테니까.

다 저마다의 이유는 있었다.


이유의 여부가 미움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듯이
나는,
이유 없이 한 사람을 미치도록 미워했다.

회사를 그만두기 일주일 전,
내 자리를 채우러 한 사람이 입사했다.
기간이 일주일정도 겹쳤는데, 성심성의껏 인수인계를 했다.


그 사람은 말이 너무 많고,

조금 밉상이었다.

인수인계 하는 족족 처음 받는 것처럼 굴었고,
동기들과 마지막 일주일을 잘 보내려 갖는 식사자리마다
기어코 기어코 끼어들었다.

미웠다.

이렇게 미워해도 되나 싶게 미웠고,
주변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그 사람을 미워했다.

같이 미워해주는 게 나도 모르게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미워하면서도
사실은 그 사람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여러 증거들이
일주일 내내 나를 찔러댔다.

나랑 같이 미워하던 사람들도 한 달 두 달이 지나며
그 사람에게 스며들었다.

서운하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단지, 아쉬운 건 그 사람을 제대로 알아갈 일주일을
내가 놓쳐버렸다는 거 그뿐이었다.


나는 단지, 그 사람이 나를 대신한다는 게,
내 빈자리가

하나도 비지 않게 된다는 게 미웠던 걸까.

글을 써서 상을 받지 못한다는 건
내가 그 자리에 서보지 못했다는 의미인데
나는 왠지,
내 이름하나 얹어놓을 자리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에
서글퍼졌다.

내게 상은 글을 써도 된다는 허락이자
한 뼘의 자리였다.


그 허락 없이도 글은 써도 될 테지만
그냥 단순히 써도 된다가 아니라
'네 글을 남들이 읽어도 괜찮겠어, 나쁘지 않겠어'라는
허락의 도장.


쾅


그때까지는 내 글은 노숙자가 되어
떠돌기만 할 것 같은 기분.

아유 냄새나요 저리 가세요
누가 그럴 것 같은 기분.

한 푼 줍쇼
한 줄 읽어만 줍쇼
백 원만 줍쇼 하고
71,400번 고개를 숙일 테다.


물론 눈치 없이 여기서는 말고

써야 할 예산이 있는

주최 측에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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