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무중력 글은 못씁니다만.
나는 발을 한 번 떼 보기로 했었다.
떼 본 곳은 공상과학이었다.
뼛속까지 문과인 주제에 겉멋이 들어,
이과를 택했던 지난날.
지지리도 못하는 수학과 과학에서
허우적대던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다만 이번엔 뼛속에 있던 것들이 조금은 쓸모를 발휘했다.
지구를 생각하고, 화성을 생각하고,
궤도 뭐시기와 다가올 미래를 생각했다.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보고,
그때 내 나이가 몇 살쯤 일지 헤아려 봤다.
그때의 노인은 내가 알아 온 노인이 아니라
나의 미래일 테니까,
나는 어떤 노인이 될까도 생각해 봤다.
겪어 보지 못한 감정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게 아니라,
세상을 내가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만든 세상에 내가 아는 감정을 넣는 일.
엄밀히 말하면 발을 완전히 뗀 건 아니다.
그래도 발뒤꿈치는 땅에서 떨어져 있었다.
글을 내고는,
이번엔 한 번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처음 접한 장르였고, 자신이 없었다.
양손으로 허공에서 글의 무게를 재 보기도 하고,
하늘을 보면 답이 나올까 해서 쳐다보기도 하고,
막막함에 발끝으로 시선을 내리기도 했다.
누가 보면 저글링이라도 하는 줄 알았겠지.
발표 날이 발표 날인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문자가 와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작가님의 출품작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나 상 탔어!!!!!"
"오, 상금 있어?"
"있지!"
"얼만데?"
"얼마 안 돼."
"얼만데?"
"축하는 안 해 주냐!"
엄마에게도 수상 소식을 알렸다.
작품은 보여드리지 않았다.
엄마는 상을 탔다는 것, 그거면 되는 분이니까.
남편에게는 보여줬다.
읽고 난 남편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나는 제로야."
"뭐라고?"
"나는 제로라고."
이게 무슨 뜻인지는 여기 적지 않는다.
설명하려면 소설을 통째로 꺼내야 하니까.
다만 그 소설을 쓴 사람은, 그 한마디에 한참 웃었다.
처음으로 심사평이라는 것도 받았다.
떨어지기만 해서 한 줄도 받아 본 적 없던 그것.
열기 전부터 심장이 뛰었다.
구체적인 평도 고마웠지만,
눈에 들어온 건 중간의 한 문장이었다.
페이소스와 유머의 균형.
나는 만나면 말이 없는 타입이라,
사람들은 내가 재미있는 줄 잘 모른다.
그런데 글은 또 나를 알아봐 주는구나.
다른 수상작들도 읽었다.
저 사람과 나, 둘 중에 무엇이 저 사람의 손을 들어줬을까.
지금은
곁다리 '참 잘했어요' 도장 같은 상도 감사히 받는다. 정말로.
하지만 언젠가, 단 한 사람만 뽑는 곳에 내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결혼할 사람은 한눈에 알아본다던데.
머릿속에서 종이 울린다던데 -나는 그정도는 아니었지만-
심사위원의 머릿속에 종을 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사람의 취향에 맞아야 할까,
아니면 모든 걸 아우르는
나만의 무엇이 정말 내 안에 있는 걸까.
모르겠다.
아직은 종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도.
그러고 보니,
필명을 지을 때 AI에게 하나 더 물어본 게 있다.
소설을 쓴다면 어떤 장르가 좋겠냐고.
사주를 본 AI의 추천 장르
1위 스릴러.
2위 공상과학 소설, 다크 판타지.
물론 쓰기 전에는 본 기억을 지웠었다.
나는 쓰고 나서야 이 답을 다시 열어 봤다.
피해야 할 장르는 달달하고 무해한 힐링물.
시는, 비. 추. 천.
"......"
나는 무해한 로맨스를 연재하고 있...
시도 연재하고 있...
AI야, 사주야, 기다려라. 너희도.
내 따끈따끈한 맛을 곧 보여줄게.
그리고 30만 원.
744만 원 중 30만 원이다.
714만 원이 남았다.
이 30만 원의 행방은 이미 정해졌다.
내년을 위해 저금해 둬야 하지만,
내가 가장 고마운 분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마음은 드리고, 자랑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