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먹을 수는 있습니다
내 주변에는 작가가 없다.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도 없다.
친구의 친구,
지인의 지인 중에 누구는 바카라을 좋아한다더라,
누구는 소설을 자주 읽더라 하는 풍문이 들려올 뿐이다.
내 주변 누구도 소설을 사서 읽지 않는다.
나보다 훨씬 많이 배운 사람들인데도.
그 말인즉, 글에 대해 소통할 사람이 없다.
최근에 친구 중 한 명에게 아주 수줍게 말했다.
"나 글 써서 얼마 전에 상 탔어."
입꼬리가 올라가고 물개박수가 나온다.
그리고 한마디.
"너 되게 글 잘 쓰는구나."
그게 끝이다.
눈빛은 꽤 경이로움으로 차 있는데,
무슨 글을 썼는지, 보여 줄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게 아니다.
내 건강, 머리 스타일, 어울리는 옷에는
끊임없이 조언하고 궁금해한다.
일이 힘들지는 않은지 안색을 살펴준다.
머리를 3cm만 잘라도 알아본다.
그런데 글은,
완전히 관심사 밖이다.
뭐라 할 수는 없다.
나도 불과 몇 달 전까지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
이유는 단호했다.
[사실이 아닌 것에 감정이 휘둘리고 싶지 않다.]
이 말을 수도 없이 했다.
고전 명작이야 상식선에서 읽었지만
현대 소설가는 잘 몰랐다.
그러면서 소설을 쓴단다.
무지의 무지의 무지의 무지렁이인 셈.
그런 내게 좋아하는 작가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글을 소비하기만 할 때는
'와, 잘 쓰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정도의 놀라움이었다.
쓰는 지금은 다르다.
단어 하나에 '세상에!' 입을 틀어막고,
문장 하나에 발을 동동 구른다.
온라인카지노는 또 어떤가.
배스킨라빈스에서 맛보기 스푼을
한 스푼씩 건네받는 기분으로,
핸드폰 액정을 붙들고 여러 사람의 문장을 맛본다.
이런 맛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에.
대박이네.
미쳤나 봐.
이런 글을?
그다음에 오는 생각은 늘 같다.
만나고 싶다.
이 사람하고는 고즈넉하게 차 한잔.
저 사람하고는 산바카라하며 바카라 얘기.
다른 사람하고는 마주 앉아 밥이라도.
거기서 멈추면 좋은데,
좋아진 작가의 북토크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나는 이러고 앉아 있다.
음, 곧 만날 것 같아.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해도 될까.
어디서 보지.
그럼 질문은 이런 걸 해야겠다.
이 작가와는 말이 잘 통할 것 같아.
아, 저분하고는 친하게 지내기는 좀 어렵겠는데.
왜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걸어서 세계 속으로〉를 보면서
아, 세상에 저런 곳도 있구나 하는 것과,
비행기 티켓과 숙소 예약까지 마친 채
여행을 앞두고 유튜브를 뒤지며
꼭 가 볼 만한 맛집을 머릿속에 지도로
생생히 그려 보는 것.
내가 하는 건 후자다.
하.
상상은 이미 〈날아서 세계 속으로〉인데
그것과는 별개로,
요즘 내 안에서는〈걸어서 슬럼프 속으로〉가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소설 하나를 쓰는데
그 안의 감정에 속절없이 빠져서,
한 문장도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다.
내일이라도 글에서 손을 떼고 탈탈 털면, 속은 편하겠지만
그러면
그러면 나는
더 이상 글 쓰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
글을 소비만 하는 사람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슬럼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아직 수영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어푸어푸 중이다.
이것도 다 지나가겠지?
그 와중에도 메뉴는 고민한다.
작가님, 뭐 좋아하세요? 저랑 뭐 드실래요?
714만 원 남았는데요.
그래도 먹을 수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