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수 없는 선물

나는 발이 땅에 닿는 글만 써본 사람이었다

by서재하

하필이면 그랬다.


그날 동료가 웃으면서 복숭아를 내밀었다.


"이거 안 달면 마트 불질러버릴 거예요."

깔깔대는 얼굴에 그늘이라곤 없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번쩍했다.
아니, 저런 사람은 불 안 지르지.

지른다면 나 같은 캐릭터일 거야.

그날 밤 나는 오싹한 이야기 하나를 썼다.
복숭아는 달았고, 이야기는 안 달았다.


다 쓰고 보니 열네 줄이었다.

짧은데 어디도 늘릴 구석이 없었다.
아쉽다, 아쉽다 하던 차에,

하필이면 같은 날,

엽편소설 공모전을 발견했다.


열 줄.
열 줄이라고. 열 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열네 줄 쓴 날, 열 줄짜리 공모전이라니.

하늘이 나를 열 줄에 맞춰 보내신 거다.

문제는 네 줄이었다.


이미 짧은 글을 더 줄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묘사도 살리고 싶고 대사도 살리고 싶은데,

줄은 열 개뿐이다.

이것도 소중하고 저것도 소중해서

한 줄을 지우면 옆 줄이 울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소설을 요약해 보았다.
요약이라는 게 이렇게 아픈 일이었구나.


동료에게는 말해두었다.


"저 공모전에 이것저것 냈거든요. 네, 복숭아 그날이요. 잘되면 말해줄게요."


복숭아 값은 해야 하니까.

그러고 나서부터가 문제였다.

상금은 얼마나 타려나, 하다가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이건 너무 작고, 저건 너무 크고.

이 공모전은 1등이 아니면 상금이 훅 떨어졌다.

그래서 신중하게, 아주 신중하게 고른 것이 드립커피세트였다.


만약 1등을 하면? 상품권이라도 더 얹어주리라.
1등이 아니면 상금이 훅 떨어진다고 걱정한 사람이, 1등을 전제로 상품권을 얹고 있었다.

선물은 예쁘게 포장해서 사물함에 고이 모셔 두었다.

언제든 줄 수 있게.
선물은 두근거리면서 주는 재미가 있는 거니까.


그리고 발표 당일.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쓸 때 오싹함이 잘 나왔으니 됐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알아버렸다.



아, 좁다.



한 장면이었다. 분위기였다.

오싹함 하나로 열 줄을 다 채워놓고 나는 흡족해했다.
분위기만 있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보였다.

스릴러는 쉬운 장르가 아니다.

겪어보지 못한 감정을, 겪어보지 못한 인물을 써야 한다.

불을 지르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살아본 적이 없는데,

그걸 상상으로 끝까지 밀고 갔어야 했는데, 나는 오싹함으로 얼버무렸다.

어려운 걸 골라놓고 쉬운 길로 도망친 거다.

나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글은 못 쓰는 사람이었다.


결과는 확인할 필요도 없었는데, 확인했다.

2화 때와는 달랐다. 억울하지 않았다.

물음표가 쾅쾅쾅 뜨지도 않았다.

그냥, 아, 역시.


알고 떨어지는 건 모르고 떨어지는 것과 다른 종류의 아픔이었다.
이불킥도 안 나왔다.

한 가지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 줄로 사람을 그려보는 연습. 분위기 말고, 사람.

그리고 다음엔, 발을 한번 떼 보기로 했다.


문득 나는

나를 한 줄로 요약해 본다.

내가 인물이라면 뭐라고 묘사할까.


기대감을 핸드폰처럼 쥐고 다니는 여자.


써놓고 나니 피식 웃음이 난다.


동료에게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잘되면 말해준다고 했으니, 안 말하면 잘 안 된 거니까.

그 사람은 아마 영원히 모를 거다.

자기가 건넨 복숭아에서 스릴러가 태어났다가

열 줄 만에 떨어졌다는 걸.


사물함 속 선물은 그대로 있다.

나는 오늘 달력을 연다.


그 사람 생일이 언제였더라.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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