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부터 짓고 앉았네

붙은 건 없는데 이름부터 지었습니다

by서재하

온라인카지노 작가.

그게 여태껏 내가 붙은 것의 전부다.


공모전은 다 떨어졌고,

상금을 받아본 적도 없고,

심사평 한 줄 받아본 적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름을 짓고 있다.

그것도 아주 신중하게.


웃기지.

나도 안다.

아무도 안 물어봤는데

혼자 작명소에 온 기분으로 앉아 있는 거다.


근데 나는 원래부터 그랬다.

나는 오해인간이다.


남들 눈에 전혀 띄지 않는 사람인데,

웬일인지 항상 소문에는 휩싸여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만에

친구 결혼식에서 마주친 동창은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너 죽었다는 소문 있었어."

"네가 강남에서 고급 바 차렸다는 얘기도 있었고."


내가? 술 한 방울도 안 마시는 내가?


인기인도 아닌 사람에 대해 왜 이렇게 말이 많았을까.

그럴 거면 나한테 전화라도 한번 해보지.

커서뿐만이 아니었다.

어릴 때는 친한 친구의 짝사랑 상대에게

누군가 내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서 난리가 난 적도 있다.

편지 받은 사람이 읽기도 전에 내용과 보낸 이를 안다는 건,

사실 그 사람이 범인이라는 뜻인데 — 그때는 어려서 그것도 몰랐다.

그냥 억울했다.

이런 게 많고, 많다.


후후 불어줄 생각 없이, 소문은 늘 먼지처럼 내 어딘가에 쌓여 있었다.

그런데 이건 나 하나일 때 얘기다.


지금도 '서재하'로 검색하면 내가 쓴 글이 바로 나온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내가 진짜 이름으로 쓴다면.


엄마에게는, "딸이 우울해 보이네."
남편에게는, "연애소설? 옆에 남편 두고 저런 글이나 쓰고 있나."


이런 얘기하는 사람이 없을 것 같지?

있다. 그것도 먼지처럼, 조용히.


나 하나 오해받는 건 익숙하다.

그런데 그 먼지가 엄마한테, 남편한테까지 날아가는 건 못 본다.

그러니 미리 가려야 했다.

아무도 오해할 수 없게, 아예 이름부터 감춰두기로.


사실 이름은 이미 하나 있었다. 서재하.

나는 꽤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런데 엄마가 어느 날 그 이름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씀하셨다.

"이름이, 좀 슬퍼 보인다."


슬퍼 보인다고? 그냥 이름인데?

근데 그 말을 듣고 나니 그 이름을 쓸 수 없었다.

엄마 입에서 슬프게 구르는 이름을 쓸 수는 없을 테니까.

글은 더 슬퍼 엄마, 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엄마가 슬프다면 슬픈 거다.


그래서 다시 짓기로 했다.

이번엔 제대로 하자 싶어서, 믿지도 않는 사주를 꺼내 들었다.

생년월일시를 AI에 집어넣고 "좋은 필명을 추천해 줘" 쳤다.

사주는 안 믿지만 이름은 잘 받고 싶은, 이 모순이 딱 나답다.


AI는 성실하게 후보를 뽑아줬다.

어떤 건 너무 거창해서 데뷔도 안 한 내가 쓰면 사기였고,

어떤 건 너무 귀엽기만 해서 꼭 반려동물 이름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을 돌리고 추리고.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


최종 후보군이 좁혀졌고 엄마가 고르시게 하고, 남편에게 통보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듣더니 표정에 뭐라 설명하기 힘든 게 스쳤는데,

그게 헛웃음인지 존중인지는 끝까지 모르겠다.

아마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거다.

'붙은 것도 없는데, 이름부터 저렇게 짓고 있네.'

뭐라고는 안 했다.


자네는 744만 원의 혜택을 보지 않을 텐가.

소리는 목구멍에만 남았다.


그렇게 이름이 생겼다.

이 이름은, 말 안 할 거다.

붙어도 안 할 거고,

떨어져도 안 할 거고,

744만 원을 다 벌어도 안 할 거다.


서재하도 가명인데 슬퍼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이번 이름은, 슬퍼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지금쯤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먼지가 내 어깨에 내려앉고 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

먼지는 내 쪽으로만 와라.

가족들한테는

못 간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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