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는 매일 밤 부둣가에 섰다.
건너편 부둣가에 있는 초록 불빛 하나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그 불빛은 그가 사랑하는 데이지의 집 부둣가에 있었다. 개츠비는 저택도, 파티도, 모든 것을 그 불빛을 보기 위해 샀다.
5년 동안.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절대 닿지 않는 거리. 사람들은 그를 허세 부리는 부자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부자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그 불빛을 볼 자격을 얻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결국 그 불빛에 닿지 못했다.
그러나 5년 동안 그 불빛을 바라본 시간만큼은, 그는 누구보다 진실했다.
내가 아는 남자가 있다.
2년 전에 헤어진 여자친구의 인스타그램을 아직도 본다. 차단은 하지 않았다. 스토리도 안 본다. 그냥 가끔 프로필에 들어가서, 마지막 게시물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만 하고 나온다.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직 그녀를 좋아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좋아하는 건 아니야. 그냥 거기에 초록 불빛이 있어서."
그 말을 듣고 나는 이해했다. 그는 그녀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기다리는 자신을 확인하러 가는 거였다. 그 초록 불빛이 꺼지지 않았는지,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무언가가 남아 있는지 보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루어져야만 사랑이라 배웠다. 고백하고, 사귀고, 결혼해야 끝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츠비는 우리에게 다른 사랑을 보여준다. 닿지 않는 것을 5년 동안 바라보는 사랑. 그건 실패가 아니라, 낭만이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인 모양이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초록 불빛을 많이 갖게 된다는 뜻이다.
절대 사지 못할 아파트의 불빛, 절대 닿지 못할 사람의 불빛, 절대 되지 못할 직업의 불빛. 우리는 그 불빛들을 끄려고 애쓴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미련하다고.
그러나 도시 은둔자라면 안다. 초록 불빛을 끄는 순간, 밤바다는 완전히 어두워진다는 것을. 자유란 초록 불빛이 없는 것이 아니라, 초록 불빛을 바라볼 자유를 갖는 것이다. 탐색이란 닿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은 닿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