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28살에 숲으로 들어갔다.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2년 2개월을 살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었다." 도시의 소음과 빚과 뉴스를 끄고, 숲의 소리를 켰다. 아침에 일어나 호수를 보고, 빵을 굽고, 바카라을 읽었다. 사람들은 그를 게으른 도망자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도망친 게 아니었다. 도시가 너무 시끄러워서, 자기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뿐이다. 그는 숲에서 2년을 살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숲은 도피처가 아니라,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내가 아는 편집자가 있다. 10년 동안 매일 야근을 했다. 그러다 작년에 퇴사하고, 3개월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고 했다. 제주도도 아니고, 그냥 자기 동네였다. 매일 오후 3시에 같은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불안했다고 했다. 핸드폰을 안 보면 도태될 것 같았다고. 그런데 2주가 지나자 다른 게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자기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별것도 아닌데 웃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 그는 말했다. "숲에 간 게 아니었어. 그냥 도시에서 소리를 끈 거야." 3개월 뒤, 그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예전보다 돈을 덜 벌지만, 더 오래 버틴다고 했다.
우리는 은둔을 도망이라 착각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연락을 끊고, 산으로 들어가면 실패한 줄 안다. 그러나 소로의 은둔은 도망이 아니었다. 탐색이었다.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에 잠식되지 않는 법을 배우는 탐색.
도시 은둔자란 숲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도시의 한가운데서 자기만의 월든을 만드는 사람이다. 이어폰을 끼지 않고 걷는 10분, 새벽 6시 아무도 없는 편의점, 퇴근 후 핸드폰을 끄는 한 시간. 그게 우리의 숲이다. 자유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소리를 끄는 순간, 바로 거기에 있다. 낭만도 마찬가지다. 숲으로 가야 생기는 게 아니라, 소음을 끄면 원래부터 있던 게 들리는 것이다.
숲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끄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