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카페, 그리고 여유를 배우는 시간

고요함 속에서 느끼는 여유

by장호현

오늘 '나만의 카페'에는 손님이 없을 것 같다. 당연한 일이다. 무더위를 피해 엉뚱하게도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카페를 열었기 때문이다.


​ 비록 손님은 없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만의 카페 문을 열었다. 밖은 숨 막히는 가마솥더위라는데, 차 안은 참 안락하고 쾌적하다. 이 고요하고 알맞은 온도가 마음에 든다.


​오래된 단골집 그리고 점심 식사


​ 이곳에 정차하기 전, 나는 왕복 10차선이 넘는 넓은 도로를 달렸다. 유독 한 차선에만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내 짐작으로는 그쪽으로 좌회전하면 식당들이 즐비하게 모여 있는 동네가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복잡한 그곳을 지나쳐 이내 어느 조용한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오늘의 점심 메뉴는 이미 몇 시간 전부터 결정되어 있었다.


​ 나의 아주 오래된 단골집, 그곳에 가면 나는 늘 가정식 정식을 시킨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 집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25년쯤 되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담당하던 울산 석유화학공단의 한 고객사 주임의 누님이 하시는 식당이라고 했다. 시내에 나올 때면 가끔 들러 점심을 먹던 것이 어느덧 이토록 깊은 인연이 되었다. 참 오래된 단골이라지만, 너무 뜸하게 한 번씩 가다 보니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퇴직 후 집밥이 그리울 때면 발걸음은 늘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향하곤 한다.


​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정갈한 반찬 10여 가지와 따뜻한 국 한 그릇, 그리고 구수한 숭늉 한 사발이 상에 올랐다. 반찬 중에 유독 가자미구이, 큰 놈이면 1/3 토막 작은 놈이면 반토막. 참 좋아한다. 그리고 보통 두 가지 종류의 데친 나물. 오늘은 호박잎과 알배기 배추를 묽은 젓갈에 찍어 먹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늦잠을 자느라 아침을 걸러서인지 유독 배가 많이 고팠다. 평소보다 젓가락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남기는 것 없이 반찬 그릇들을 거의 다 비워냈다. 마지막에는 숭늉 한 대접을 가득 채워 마셨더니, 온통 숭늉으로 배를 채운 듯 든든한 포만감이 차올랐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식당 문을 나섰다.


​지하 주차장에서 연 나만의 카페


​ 식사를 마친 후, 어제 갔던 그 커피 전문점으로 차를 몰았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 차에 올랐다. 계기판을 보니 온도가 무려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제보다 훨씬 더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 문득 어제 나만의 카페를 열었던 고가도로 밑 명당이 생각났다. 그곳으로 향하려다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차라리 지하 주차장이 훨씬 시원하고 좋지 않을까?'


근처에 적당한 곳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색소폰 연습실에 갈 때 가끔 주차하던 아파트가 떠올랐다. 차량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곳이었다.


​ 망설임 없이 아파트로 차를 돌려 처음으로 지하 주차장 진입로로 내려갔다. 이중 주차가 꽤 되어 있는, 조금은 복잡한 주차장이었다. 다행히 지하 1층에 빈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덩치 큰 SUV 한 대가 주차선 앞에 절반쯤 걸쳐진 채 자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주차 브레이크가 풀려 있으려니 생각하고 차에서 내려 밀어보니, 예상대로 부드럽게 밀려 나갔다. 적당한 공간을 확보한 뒤, 나는 비로소 그 아늑한 주차 공간에 나만의 카페를 오픈했다.


​ 운전석 시트를 뒤로 깊숙이 젖히고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나만의 카페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계기판을 보니 온도가 32도로 뚝 떨어져 있었다. 잠시 사이에 3도나 내려간 것이다. 역시 자리를 잘 잡았다 싶었다. 찾아오는 손님 하나 없는 외딴 카페지만, 오늘 이 자리는 더없이 훌륭한 선택이었다.


​공허함과 여유의 경계에서


​ 오늘 아침에는 눈을 뜨고도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은 채, 거의 한 시간 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포털 사이트의 이런저런 기사도 읽고, 사진도 몇 장 수정하고, 관리하는 파일들도 대충 둘러보았다. 그래서인지 매일 스마트폰으로 하던 나만의 카페 루틴을 이미 아침에 다 끝내버린 상태였다.


​ 일과가 일찍 끝나버리자 문득 마음 한구석에 공허한 바람이 불어왔다. 이 고요한 시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잠시 망설여졌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연습실로 갈까?’


‘아니면 차를 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 볼까?’


‘그것도 아니면 오늘은 이만 카페 문을 닫고 드라이브나 한 바퀴 갈까?'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 잠시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생각을 정리해 본다. 돌아보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멈춰 서 있는 것에 결코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내가 지나온 삶의 시간들이, 그런 한가로움을 순순히 허락하지 않는 치열한 삶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잠시라도 틈이 생기면, 그 시간을 '여유'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공허함'으로 느끼곤 했다.


​ 바뀌어야 한다. 아니, 바꾸어야 한다. 이제는 정말 바뀔 때가 되었다.


이 멈춤의 시간을 온전한 '여유'로 인정해야 한다. 할 일이 없어서 방황하는 시간이 아니라, 지나온 길을 잠시 정리하는 시간. 다음에 할 일을 고요히 준비하는 시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롯이 이 '현재'를 즐기는 것이다. 여유 자체는 현재의 삶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과 생각은 왜 그렇지 못한 지.


​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너무 깊이 회상하며 미련을 둘 필요도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굳이 미리 소환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순간, 현재를 온전히 즐기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진정한 삶이 아닐까? 지금 내가 가진 여유도 그렇게 즐겨야 하는데…


​다시 눈을 감고, 현재를 즐기다


​ 사각 얼음이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커피를 한 모금 머금고, 다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이 고요함 속에 머물러 본다. 이 낯선 멈춤에도 차츰 익숙해지리라 확신한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갈 것이다.

​ 아마 잠시 후면 나는 평소처럼 색소폰 연습실에서 나만의 루틴을 마치고 반주기를 켤 것이다. 그리고 윤시내의 '열애'를 틀고, 그 축축하고 깊은 서브톤에 혼신의 힘을 쏟아내고 있으리라.


​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 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 이번 달 학원 정기 발표회 무대에서 연주하기 위해 요즘 한창 연습 중인 곡이다. 뜨거운 여름날, 지하 주차장 나만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모금과 다가올 음악의 선율이 잔잔한 여유가 되어 내 현재를 가득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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