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보낸 연휴 그리고 삶의 현재
정년퇴직을 하고 맞이하는 일상은 대체로 느슨하고 평화롭다. 예전처럼 공휴일이나 연휴가 달력에 빨간색으로 찍혀 있어도 삶의 리듬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여느 날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번 제헌절 연휴는 조금 달랐다. 마침 금요일이 공휴일이라 3일간의 기분 좋은 연휴가 만들어졌고, 일주일 전부터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덤덤했던 일상에 기다림이라는 설렘이 번지기 시작했다.
목요일 밤늦은 시각, 아들을 마중하기 위해 울산역으로 나갔다. 늦은 밤 KTX를 타고 내려온 아들을 차에 태우고 집 근처로 와 간단히 맥주 한 잔에 야식을 기울였다.
"요즘은 좀 어떠냐? 재미난 일은 있고? 힘든 건 없고?"
아들은 덤덤하게 둘 다 없다고 대답했다. 아주 평이하고 무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한창 젊은 나이에 삶의 역동이나 재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에 자잘한 돌멩이 하나가 걸렸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들의 입에서 예전에 들었던 고민이 다시 나왔다. 지금 하고 있는 대학원 연구가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학부에서는 바이오메디컬 공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에서는 생물화학 공학과로 진학했으니 기초가 되는 학문적 바탕부터 사뭇 달랐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과 학문에 적응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이제야 겨우 교수님이나 선배들의 말을 조금 알아듣겠노라 했다.
하지만 아들은 '과연 이렇게 박사 과정을 마치더라도 내가 한 분야의 진정한 박사라 불릴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과 불안을 안고 있었다. 전에도 한번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다시 들으니 대화의 공기는 자연스레 무게감을 띠었다. 그러나 나는 아들을 다그치거나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이미 다 큰 녀석이고, 본인의 삶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3박 4일의 시간은 뜻밖의 손님과 풍성한 여정으로 채워졌다. 다음 날은 미국에서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처조카가 놀러 왔다. 함께 울산 대왕암의 기암괴석과 시원하게 트인 출렁다리를 둘러보고 좋아하는 메뉴로 저녁을 함께했다. 처조카는 이모와 따뜻한 시간을 보낸 뒤 우리는 그를 대구로 배웅했다. 다음 주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는 처조카와의 짧은 만남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시간과 인연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특별한 계획 없이 아들과 바다 구경이나 할까 싶어 집을 나섰다. 정자 바다를 지나는 길을 따라 유유히 드라이브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발길은 문무대왕릉 근처에 닿아 있었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봉길리 해변 앞바다의 릉을 배경으로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이어 가까운 감은사지에도 들러 웅장한 석탑 아래에서 또 하나의 추억을 사진으로 담았다.
감은사지를 나오니 문득 예전에 몇 번 찾았던 감포 항구의 한 식당이 떠올랐다. 아들에게 가본 적이 있냐고 물으니 아들은 처음이라고 했다. 내 기억에는 분명 아들과도 한 번 왔던 것 같은데, 아비의 아련한 기억과 아들의 낯선 반응이 미소를 자아냈다.
감포항 초입에 있는 식당에 도착해 둘이서 조금 이른 저녁을 먹었다. 아들은 처음 접해보는 음식이라면서도 아주 입에 잘 맞는지 연신 마음에 든다며 접시를 비웠다. 마지막에 나온 맑은탕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인데 아들도 맛을 느끼며 즐기는 게 눈에 보였다. 훗날 아들의 기억 속에도 오래도록 정겹게 남을 뜻깊은 저녁 식사 자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배도 부르고 잠시 산바카라을 하기 위해 파도가 하얗게 부딪치는 감포 방파제로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바다 너머로 오래전 우리 가족이 하룻밤을 함께 머물렀던 콘도가 아득히 보였다. 아들도 그 시절의 기억을 금세 떠올렸다. 추억이 밀려드는 방파제 위를 걸으며, 나는 그간 가슴속에 품어왔던 생각과 아들의 고민에 대한 답을 아비로서 차분히 정리하여 세 가지 당부의 말을 건넸다.
첫째,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네가 스스로 선택해서 시작한 길이다. 이미 시작된 길이니 뒤를 돌아보거나 너무 멀리 앞을 내다보며 조급해하지 마라. 그저 오늘 너에게 주어진 일, 현재 하고 있는 공부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둘째, 다가올 미래를 홀로 지레 짐작해 걱정하기보다는, 이미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나 연구자들의 발자취를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들은 논문을 많이 읽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선배든 후배든 교수님이든 그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경험을 알아가는 것이 결국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셋째,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안을 굳이 오늘로 소환하여 현재를 갉아먹을 필요는 없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야기한 것을 차근차근해나간다면, 세 번째 걱정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부질없는 짓에 불과하다.
방파제를 때리는 시원한 파도 소리를 배경으로 나는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아들아, 현재 네가 가지고 있는 조건과 여건만으로도 너는 이미 먼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의 카드를 다섯 장이나 쥐고 있단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 다섯 개의 선택지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네가 앞으로 몇 년간 조금 더 노력해서 그 선택지를 여섯 개, 일곱 개, 여덟 개로 늘려간다면 네 삶의 길은 훨씬 다양해질 것이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국 다섯 개에 그친다 해도 그것대로 충분히 값진 일이다.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거나 조급해하지 마라. 지금 너의 노력은 먼 미래에 네가 손에 쥘 선택지를 넓혀가는 소중한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강조했다.
머릿속으로 이 세 가지를 새기되, 이와 별개로 ‘오늘을 재미있게 사는 법’을 찾아보라고 했다. 학교 안이든 밖이든 너무 거창하게 찾으려 하지 말고 소소한 재미거리를 만들어보라고. 해보아서 너와 맞으면 오래 즐기면 되고, 맞지 않으면 또 다른 재미를 찾으면 된다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당장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재미 또한 너무나 중요하다고 일러주었다. 말귀가 밝은 아들은 아비의 뜻을 금세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의 마음과 태도가 조금씩 긍정적으로 바뀌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 보았다.
다음 날, 서울로 올라가는 아들을 태우고 다시 울산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이른 저녁을 함께 먹으며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한 번 더 얹었다. 그러자 아들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어제 감포 방파제에서 해 주셨던 이야기 잊지 않으려고 잘 적어 두었어요."
그 한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깊게 뭉클해졌다.
‘내가 이런 말을 자꾸 하는 건, 나중에 네가 잘되고 못되고를 염려해서가 아니다. 오지도 않은 멀리 있는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늘이라는 소중한 날을 재미없고 의미 없이 보내버릴까 봐, 그게 부모로서 가장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란다.’
몇 시간 뒤, 서울에 무사히 도착한 아들에게서 문자가 왔다.
"KTX에서 내려서 좌석버스 시간이 너무 잘 맞아 집에 빨리 왔어요. 아빠도 푹 쉬세요."
내가 건넨 이야기들이 아들의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는 데 작은 이정표가 되었기를 바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묵묵히, 그리고 열심히 해나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아들을 깊이 믿는다.
오는 8월이면 또 한 번의 연휴가 찾아온다. 그때는 딸아이도 함께 내려오기로 했다. 그때 다시 만날 아들의 얼굴에서, 그 마음과 머릿속이 조금은 더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는지 살며시 그 빛을 읽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