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담론의 분석과 개념의 해부: 현대거시경제학과 푸코적 접근
언젠가 강의 중 오준호 소장님의 강연을 접하게 되어 이리 비평문을 남겨 봅니다.
다만 통상적인 강연감상과는 달리 기본소득 전반에 대한 경제학 및 철학적 전제의 가정 및 계보의 분석을 통한 해부, 그리고 대안에 대한 개인적 고찰을 담은 칼럼으로 작성하였으니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기존의 에세이나 칼럼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은 2010s 이후의 주류거시경제 개념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더욱 멀리, 그리고 더욱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경험을 드리고자했습니다.
기본소득 강연을 들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강연이 복지 확대라는 익숙한 틀을 넘어 노동슬롯 이후의 슬롯를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의제로 격상시킨 점이다. 기존의 복지 담론이 대체로 빈곤 완화와 재분배의 차원에 머물렀다면, 이번 강연은 AI와 자동화가 가속되는 시대에 인간의 존재 방식 자체를 재구성하려 한 점에서 흥미로웠다.
다만 필자는 이 강연을 다소 까다로운 두 개의 렌즈를 통해 다시 읽어 보려 한다. 하나는 소득분위별 가계마다의 소비성향이 다르므로 집단마다의 국민소득 3면 등가 원칙을 산출과 소비를 달리함으로써 기각하는 21세기 현대 거시경제학(Heterogeneous Agent New Keynesian, Two Agent New Keynesian, 또는 완전합리성을 기각하는 Behavioral new keynesian, 이하 HANK, TANK, BNK model)의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를 중립적 재분배자가 아니라 주체를 생산하고 인구를 관리하는 권력장치로 본 푸코적 통치성(governmentality) 분석이다. 출발점은 전혀 다르지만, 두 관점은 이번 강연이 암묵적으로 전제하는 두 가지 낙관, 정바카라의 산술을 합리적으로 계산하는 시민, 그리고 그 산술을 충실히 집행하는 투명한 국가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만난다.
강연이 던진 질문이 거대한 만큼, 그 질문에 대한 강연 자신의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해당 강연을 개념적 기원 분석을 통해 해부한 이후, 의미를 재배치하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이다.
강연자는 기본소득을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존재소득’으로 규정했다. 노동을 통해서만 생존이 정당화되는 체제에서 벗어나 인간이 존재 그 자체로 일정 수준의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이 주장은, 앙드레 고르의 후기 자본주의 비판과 직접 닿아 있다. 인간이 정규 노동에 종속되는 현상이 미래에 없어진다고 본 미래학자인 고르. 노동에 종속되지 않는 시간에 인간이 비로소 자기실현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 그는 보았다. 푸코의 시각에서 보면 그 함의는 더 분명해진다. 현대 국가는 인구를 점점 더 생산성과 고용 가능성의 격자 위에서 관리하며, 강연자가 비판한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되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은 푸코가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분석한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기업가’, 즉 자신을 인적 자본의 포트폴리오로 끊임없이 경영해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의 전형이다. 생존을 고용에서 분리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분명 이 통치성에 균열을 낼 잠재력을 지닌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강연의 서사에는 검토할 부분이 있다.
강연자는 노동슬롯에서 존재슬롯로의 이행을 인간이 본질에 가까운 존재로 돌아가는 해방의 서사로 제시한다. 하지만 니체가 그러했듯이 푸코 또한 권력 바깥에 해방을 기다리는 참된 자아가 있다는 가정(억압 가설)을 일관되게 경계했다. 모든 지식이 필연적으로 권력을 지탱하는 장치로 작용한다고 보는 푸코의 입장에서, 존재슬롯 역시 권력의 외부가 아니라 또 다른 주체화의 체제이다. 무엇이 인간다운 존재인지를 규정하는 일조차 통치의 일부이며, 강연자가 인용한 인간다운 생활의 기준선인 월 130만 원이라는 수치 자체가 행정장치가 산출한 규범이다. 따라서 질문은 통치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어떤 통치인가로 다시 설정되어야 한다.
더 결정적인 문제는 '무조건성'을 둘러싸고 나타난다. 강연자는 기본소득의 핵심을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묻지 않는 무조건성으로 규정하고, 이를 수급자의 SNS까지 들여다보는 미국 복지 행정과 대비시켰다. 그러나 사행성, 유흥 소비에 대한 우려에 답하면서 강연자가 실제로 제시한 전달 수단은 지역화폐였고, 나아가 블록체인을 이용해 특정 용처에서는 화폐가 ‘아예 쓰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는 무조건성의 실현이 아니라 조건성의 재배치다. 푸코적으로 말하면, 복지사가 수급자를 일일이 감시하던 규율이 사라진 자리에 특정 행위를 사전에 봉쇄하도록 설계된 화폐 인프라가 들어선다. 닫힌 규율기관에서 연속적인 변조(modulation)로의 이행이 여기서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 강연이 실제로 제안한 형태의 기본소득은 통치성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양식을 가시적 감시에서 인프라에 내장된 통제로 바꾸는 것에 가깝다. '무조건성'은 수사로 남고, 조건성은 결제 레일 속, 즉 인구에게 보이지 않는 통치의 영역으로 옮겨가 비가시화된다. 보이지 않는 것이란 무엇인가? 결국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슬롯적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공유부에 대한 설명 역시 흥미로웠다. 강연자는 토지, 데이터, 기술, 슬롯적 인프라가 개인의 노력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슬롯 전체가 축적한 유산이라고 보았고, 허버트 사이먼(부유한 슬롯에서 개인 소득의 8~9할은 슬롯적 유산에서 비롯된다)과 로버트 솔로우(20세기 미국의 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노동도 자본도 아닌 축적된 기술진보)를 근거로 들었다. 1980년대 국가의 인프라 투자와 대학의 비영리적 기술 이전, 세제 지원이 산업 성장에 기여했다는 삼성 반도체 사례도 설득력이 있었다. 기업의 성과를 온전히 사적 영역의 산물로만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슬롯적 배당의 논리는 충분히 성립한다. 기업의 실존에 있어서는, 그 기업의 역사가 슬롯적 토대에서 기능해 옮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다. 기업의 행위에 있어서의 특유성은 결국 그러한 역사성 하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두 가지를 짚어 둘 필요가 있다. 첫째, 강연은 '기여에 대한 보상'의 논리와 '평등한 권리'의 논리 사이를 오간다. 공동체가 부의 창출에 기여했으니 그 몫을 돌려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투표권처럼 누구나 동등하게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분배의 결과가 서로 다르다. 전자는 기여 크기에 따른 차등을 함축할 수 있는 반면 후자는 그렇지 않으며, 강연자 스스로 응능 부담 원칙과 기여 보상을 구분하면서도 두 논리를 섞어 쓴다. 둘째, 데이터를 슬롯적 공유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앞서의 푸코적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데이터가 배당의 원천이 되려면 먼저 포착되어 계산 가능한 형태로 데이터화되어야 한다. 즉 데이터 배당은 감시, 데이터화 장치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전제하며, 시민에게 일정한 몫을 지급함으로써 그 장치에 대한 동의를 사들인다. 강연자가 데이터 배당을 더 좋은 데이터를 더 많이 창출하도록 유도하는 인센티브로 설명한 대목은 이 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필연적으로 시민을 더 성실한 데이터 생산자로 길들이는 통치 기술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 거대한 판옵티콘이 그 자리에서 형성될 수도 있지 아니한가? 판옵티콘의 기묘한 점은 그 중간의 감시자 자리에 누가 서 있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보다 정교한 거시 분석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강연은 AI 생산성 증가와 일자리 축소 가능성을 중심으로 솔로우 모델을 통해 기본소득의 경제성을 설명했지만, 해당 모델은 경제성장모델이기에 현재 경제학 담론에서 과잉 내생성으로 그리 많이 쓰이지는 않는 모델이므로, 실제 정바카라 효과를 분석하려면 완전합리성과 효율적 시장을 강하게 가정하는 루카스 비판 이후의 Microfoundation적으로 정당화 가능한 경기변동기반 거시 모델로 정바카라당국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
이때, 표준 DSGE(루카스비판 이후 거시경제학자들이 구축한 외생적 충격에 따른 동태확률일반균형모델링)를 전제로 하면서도 이를 개량한 TANK-DSGE, 혹은 HANK-DSGE가 더 적합하다. 이 모형들의 핵심은 가계의 소득별로 한계소비성향이 다름에 착안해 NK모형에 있어 산출량과 소비를 달리하여 가계마다 유효수요에 대한 소비 진작 효과가 달리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가계에서의 정바카라 효과가 더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에 2010년대 이후의 거시학자들은 주목하게 되었다.
기본소득처럼 기대심리, 소비성향, 위험회피에 깊이 작동하는 정바카라은 바로 이 틀에서 더 잘 포착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한계소비성향(MPC)의 이질성이다. 강연자는 한국의 가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50%로, 규모가 비슷한 선진국의 65~70%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이는 사실상 유동성 제약에 묶인 고 한계소비성향 가계가 두텁게 존재한다는 진술이며, 이질적 행위자를 명시하는 행동주의, 이질적 행위자 NK 모형이 형식화하는 바로 그 상황이다. 보편적 현금 이전이 이 고 한계소비성향 가계를 경유할 때 총수요 진작 효과는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요인들이 부채가 많거나 비유동자산으로 재산 대부분을 소유하는(HtM, hand to mouth, 손가락 빨며 입에 풀칠한다는 의미) 유동적으로 돈을 쓰기 힘든 가계(일반적으로 고 MPC 가계)에 있어 정바카라효과를 지속시키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서 HANK, TANK-DSGE는 강연의 수요 측 논거를, 강연자의 다소 막연한 ‘지역경제에서 돈이 돌게 한다’는 old Keynesian(유효수요론, 솔로우 등)적 표현보다 훨씬 단단하게 뒷받침한다.
강연에서 언급된 노동을 완전히 포기하기보다 더 나은 노동으로 이동할 가능성(독일 시범사업에서 노동시간 자체는 대조군과 비슷했으나 일자리 만족도와 자기 계발 투자가 늘었다는 결과) 역시 기존 솔로우 모델이나 Ramsey 모델 혹은 중앙은행의 표준 노동공급 모형(RANK)보다는 이질 가계 혹은 두 가계 NK모형이 더 자연스럽게 설명할 것이다. 다만 실증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 운용이 가능한 모델들이라는 데에서 어려움은 있을 것이다.
재원 조달에서는 단순 세수 확대보다 국부펀드, 국채기금, 공공투자기금 같은 기금형 모델이 더 인상적이었다. 강연자가 언급한 알래스카 영구기금배당, 신안군의 재생에너지 배당, 경기도의 데이터 배당 시범사업은 단순한 이전지출이 아니라 ‘슬롯 전체가 자본의 일부를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구조적 의미를 지닌다. 강연자는 기금형 모델의 정치적 이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단순 증세 모델은 조세 부담이 즉각 체감되어 조세저항과 정치적 반발을 부르기 쉽지만, 국채기금이나 국부펀드를 통한 방식은 투자와 수익 배당 사이에 시간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부담의 체감도를 낮추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증가와 산업 성장의 과실을 지속시키며, 이 효과는 슬롯 전체에 환류된다는 것이다. 해당 시간 차 논리는 행태적 뉴케인지언 모델의 Myopia로 설명 가능한 부분이다. 하지만 편익에 있어서의 할인도 해당모형은 상정하기에 더 많은 데이터 연구가 필요하다. BNK, HANK, TANK-DSGE 모델 전부 2010s 이후로 주로 쓰이는,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신고전 종합 이후 현대적 동태확률일반균형(DSGE)을 상정하고 운용하는 모델이므로, 필자 개인적으로는 강연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거시 모델들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실제로 '존재슬롯'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할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충분하지 않은 수준의 기본소득은 오히려 저임금 노동을 떠받치는 보조 장치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이는 18세기말 영국의 스피넘랜드 구빈제가 임금을 보조함으로써 도리어 저임금을 고착시켰다는 고전적 비판과 같은 구조의 우려다.
그럼에도 이번 강연은 기술 발전의 성과를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동원한 두 렌즈는 결론에서 하나로 모인다. HANK, TANK, BNK 모델은 시민이 합리적 계산자가 아니라 가계의 소득에 따라 제약되거나, 인지적으로 제약된 주체임을 보여 주고, 푸코의 통치성 분석은 바로 그 인지적 제약을 다루는 프레이밍과 전달의 설계야말로 통치 행위임을 보여 준다.
현대거시경제학이 레버를 기술한다면, 통치성 이론은 그 레버를 누가 어떤 주체를 향해 당기는지를 묻는다. 지역화폐냐 현금이냐, 기금형이냐 조세형이냐 하는 선택은 중립적인 집행상의 세부가 아니라 어떤 인간형과 어떤 공동체를 주체로 빚어낼 것인가에 관한 통치 그 자체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논쟁의 핵심 질문은 기본소득이냐 아니냐라기보다도 특정한 설계가 어떤 주체화의 체제를 정식화하는가일 것이다. 그 질문은 분명 강연이 내놓은 답보다 더 멀리까지 우리를 데려간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존재해야만 하는가?
과연 노동의 종속에서 인류는 벗어날 수 있겠는가?
노동에서 벗어난 개인의 말은 과연 말이 될까?
아니면 결국 개인은 권력이 구축한
판옵티콘 속에서 발화의 가치를 상실하게 될까?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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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7~78년』.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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