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하는 날 새벽에 분모골로 갔다. 전날 밤 잠을 설쳤다. 오래 미뤄 온 일이 오늘로 끝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직 어두웠다. 손전등 불빛이 봉분 둘레의 마른 풀과 젖은 흙을 번갈아 비췄다. 비만 오면 질척이던 자리였다. 아버지가 딱 한 번 남긴 말 때문에, 선산으로 모시자던 친척들의 말도 오래 물러나 있던 자리였다.
산역꾼들은 말이 없었다. 삽과 괭이를 세워 두고 땅의 상태를 살피는 손놀림이 익숙했다. 그들에게는 오늘 일이 처음이 아닐 것이다. 그 익숙함이 오히려 나를 더 긴장하게 했다. 날이 풀렸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시렸다.
법사가 묘 뒤편에 상을 놓고 축을 읽었다. 조상의 묘를 오늘 옮기니 땅의 신께서는 노여워 마시라고. 봉분을 세 번 두드렸다.
“파묘요, 파묘요, 파묘요.”
잠든 이를 놀라게 하지 않으려 미리 알리는 소리라고 했다.
삽이 들어갔다. 봉분이 흩어지자, 젖은 흙이 나왔고 삽날에 무겁게 달라붙었다. 물이 많이 도는 자리라고, 누군가 낮게 말했다. 아버지가 평생 논에 물을 대며 살았는데, 정작 죽어서는 물이 도는 자리에 누워 계셨다.
그런데 흙을 다 걷어내고 드러난 유골은 뜻밖에 깨끗했다. 검게 물들지도, 뿌리가 감고 있지도 않았다. 누런빛이 도는 뼈들이 가지런했다. 산역꾼 하나가 몸을 숙여 한참 들여다보더니 낮게 말했다.
“황골이여.“
“이 자리, 뉘가 봐준 규?”
나이 든 산역꾼이 허리를 펴며 나를 봤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딱 한 번 했다는 그 말, 분모골에 묻어 달라던 그 말만 알았지, 그 말을 실제로 이 흙 속 한 자리로 옮겨 놓은 지관의 이름은 들은 적이 없었다.
물 잡히는 자리치고 이렇게 깨끗한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나는 그 말 앞에서 오래 쥐고 있던 무언가가 조금 놓이는 것을 느꼈다. 걱정과 달리,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도 물을 비켜 가 계셨다.
나는 그 흙 앞에서 지난 몇 달을 생각했다. 신정리의 작은아버지, 송학리의 송씨 노인, 분강리의 황재석 씨.
송학리에는 작은아버지가 다녀왔다. 칠십 년 가까이 자손도 없이 혼자 있던 무덤이라, 봉분은 거의 무너져 있었고 잔디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그 자리를 보지 못했다. 이름 대신 성씨만 남은 사람. 잘 먹었네, 다녀올게, 그 한마디를 안고 몇 년을 더 살았던 사람. 칠십 년 동안 아무도 묻지 않았던 그 사람을, 가족의 흙으로 데려오고 있었다.
선산에서는 어머니가 이미 계신 자리 양옆으로 흙이 넓혀져 있었다. 왼쪽에 첫 어머니, 가운데 아버지, 오른쪽에 어머니. 산역을 맡은 이가 나침반으로 방향을 짚으며, 서쪽이 남자 자리라고 짧게 일러 주었다. 감정이 없는 말투였다.
흙이 쏟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 한 삽은 소리가 좋지 않았다. 세 번째부터는 그냥 흙 소리가 되었다. 봉분이 하나로 올라왔다. 셋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였다.
향을 피우기 전,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봉분 앞에 놓았다. 불은 붙이지 않았다. 아무도 묻지 않았고, 나도 설명하지 않았다.
산을 내려오다 몇 걸음마다 뒤돌아보았다. 새 봉분은 방금 만든 것인데도, 오래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둥글었다. 분모골과 송학리와 여기, 흩어져 있던 세 사람의 시간이 마침내 하나의 흙 밑에 포개졌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 나지 않았다.
지금 선산에는 아버지와 두 어머니, 이렇게 세 분이 함께 모셔져 있다. 흙은 결국 같은 흙이다.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