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모골 건너편에는 황씨네가 살았다. 논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던 집. 그 집 아들 황재석 씨가 아직 근처에 산다고 작은아버지가 일러 주었다.
분강리로 들어가는 길은 좁은 농로를 몇 번 꺾어야 했다. 추수가 끝난 논 사이로 둥글게 말아 놓은 곤포 사일리지가 서 있었다. 집 앞에 차를 세우자, 묶여 있던 개 한 마리가 사납게 짖어댔다.
황재석 씨는 마당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볕에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깊었고, 담배를 쥔 손가락 마디가 굵었다. 내가 전성수 씨 막내라고 하자,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막내. 그러면 질 어린. 나 기억 못허지?”
방에는 흙냄새와 오래된 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는 담배를 새로 꺼내 들었지만, 불은 붙이지 않은 채 마주 앉았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 가늠하는 쪽은 오히려 그인 것 같았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이야기가 궁금해서 왔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한 번은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
두 딸 이야기를 물었을 때, 그는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첫딸은 이듬해에 태어나 얼마 못 가 죽었다. 이름을 짓기도 전이었다. 황재석 씨의 어머니가 몇 번 그 집에 들렀는데, 아버지가 마당에서 아이를 안고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애는 자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냥 서서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경기였는지 무엇이었는지, 그 시절엔 이름도 몰랐다. 눈이 뒤집히고 입술이 퍼레지더니 오래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혼자 아이를 안고 나가 어딘가에 묻고 왔다. 며칠은 그 집 굴뚝에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둘째 딸은 그보다 조금 더 살았다. 걷는 것은 보지 못했으니 두 돌이 안 됐을 거라고, 홍역이었을 거라고 했다.
황재석 씨는 그 아이를 묻고 온 저녁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분모골 마당 아래쪽, 큰 감나무 밑에 아버지가 혼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흙을 집었다가 놓고, 다시 집었다가 놓고. 무엇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부르려다가 못 불렀다. 그 등이,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뒤로 딸 셋이 더 태어나고, 아들이 태어났다. 그때부터 그 집이 조금씩 웃었다. 조용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텅 비어 있던 것이 나중에는 조용해도 꽉 찬 것처럼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흙을 집었다가 놓던 손. 그 손이 훗날 호미를 잡고, 낫을 잡고, 지게를 지고, 찬합 밑에 수표를 숨겼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들의 머리를 쓸어 주던 손, 딸의 방문 앞에서 몇 번이고 멈춰 서던 손. 아버지가 흙을 집었다 놓았듯, 나도 무언가를 집었다 놓기만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문을 나설 때 황재석 씨가 한마디를 보탰다.
“인자 된 거여. 뭐가 더 있간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한참 마당에 서 있었다.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