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문

by낮달

집에 돌아와서도 그 감나무 아래 앉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뒷모습은 이상하게도, 딸아이의 방문과 겹쳤다.


딸의 방문은 언제부터인가 늘 닫혀 있었다. 밥 먹을 때도 몇 마디를 넘기지 않았다. 아이는 자기 방에서 시간을 보냈고, 나는 그 문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시간이 흐르면 곧 다시 열릴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도 문은 계속 닫혀 있었다.


어릴 때는 안 그랬다. 유치원에 다닐 때만 해도 하루 종일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늘어놓았다. 손을 잡고 걸을 때 그 작은 손이 내 손가락 두 개를 겨우 감싸던 감각이 아직 그대로다. 그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밤,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앉아 있는데 벽 너머에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낮고 빠른 속삭임, 그리고 웃음. 참으려다 실패한 듯한 웃음소리가 복도를 타고 흘렀다. 저 웃음을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였는지, 나는 헤아릴 수 없었다.


살아 있구나. 저 아이는 저렇게 살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 웃음이 이 집 식탁까지는 건너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그 방 안에서 저렇게 쉽게 웃는 아이가, 왜 밥그릇 앞에서는 먼 곳만 보는 것일까.


손이 고생해야 맛이 난다던 아버지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그저 마당으로 나갔을 뿐, 무슨 뜻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문 앞에서, 나는 그 말을 다시 생각한다.


아내는 나보다 딸과 가까운 편이었다. 그래도 요즘은 아내에게도 방문이 자주 닫혀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 얘기를 나누면서도, 정작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서로에게 묻지 못했다.


나는 일어나 방문 앞까지 갔다. 손이 문고리에 닿았다. 그러나 그뿐. 열지도, 두드리지도 못했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아니, 무슨 말이든 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먼저 왔다. 문을 열면, 지금 겨우 붙들고 있는 무언가가 함께 무너질 것 같았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이가 잠들었는지, 그저 조용히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 침묵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서로의 숨소리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 있다가 감나무 아래 아버지가 떠올랐다. 흙을 집었다가 놓던 손. 그 손도 이런 것을 알았을까. 쥐는 손과 놓는 손이 같은 손이라는 것을. 나는 모른다.


아버지는 이름도 짓지 못한 딸을 그렇게 보냈다. 나는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딸을 앞에 두고도,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문에서 손을 떼고 돌아섰다. 분모골의 아버지와 송학리의 그분이 떠올랐다. 계속 그렇게 혼자 두어도 되는 것인지.


다음 날 아침,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