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다시, 손

by낮달

요즘 나는 아들 방에서 잔다.


이 집에서 내 자리는 그런 곳들이다. 아들 방, 주방, 욕실, 분리수거 봉투 앞. 아내와는 간장과 된장의 차이만큼 멀다. 할 말이 있어도 그냥 닫는다.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


쉰 살이 되고 나서 생각이 많아졌다.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 나는 쉰이 되고 나서야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안다기보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기분이 든다. 아버지가 쉰 살이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버지도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다만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혼자 봄동 비빔밥을 먹다가 맥주 캔을 딴다. 바카라장에서 백석을 꺼낸다.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창밖을 본다. 창밖에는 맞은편 아파트 불빛들이 있다. 각자의 저녁들.


나는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는 백석을 몰랐겠지만, 이 문장의 감각은 알았을 것이다. 아랫목에 누워 며칠을 앓으면서 손이 가는 대로 찬합 밑을 더듬던 사람이라면. 수표를 꼬깃꼬깃 접어 숨겨두고 그 사실을 잊어버린 사람이라면. 지금도 아버지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이해가 닿지 않는 자리가 어디인지는 이제 조금 안다.


맥주를 내려놓고 설거지통에 그릇을 담근다. 손이 찬물에 닿는다.


그때 아들이 나온다.


자다가 일어난 모양이다. 한쪽 머리가 들려 있다. 눈이 반쯤 감겨 있는 채로 주방으로 들어와 냉장고를 열었다가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닫는다. 그러고는 내 곁에 와 선다. 말없이.


아이를 본다.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다. 저 아이는 언제 이런 것을 배웠을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는데.


나는 가만히 아이 머리 위에 손을 얹는다. 아이가 내 손에 제 뺨을 살짝 기댄다. 눈이 더 감긴다.


“사랑해.”


“나두.”


아이가 몸을 조금 더 기댄다.


나는 아버지가 평생 내게 하지 못한 말을 오늘도 한다. 쉽게 한다. 그런데 이따금 생각한다. 정말로 쉬운 것인지. 이 말을 하면서도 나는 아들이 실제로 무엇을 느끼는지, 이 말이 그 아이의 어딘가에 닿기는 하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도 찬합 밑에 숨겨두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건지 모른다. 형식만 다를 뿐, 꺼내지 못하는 것이 여전히 남아있는 건지도.


아들의 뺨이 내 손바닥 안에 있다. 따뜻하다. 손이 고생해야 맛이 난다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다. 아버지가 그 말을 할 때 나는 마당으로 나갔다. 그것이 무슨 말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내 손을 내려다본다. 오른손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선이 하나 있다. 두 개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하나만 있다. 아버지 손에도 이런 선이 있었을까. 그 오른손 엄지가 세 갈래로 갈라진 나무껍질처럼 변한 뒤로, 나는 아버지 손을 많이 봤지만 손바닥을 들여다본 적은 없다. 흙 묻은 손이었고, 호밋자루를 쥔 손이었고, 수표를 내밀던 손이었다.


지금 내 손에 닿아 있는 이 온기가, 훗날 저 아이의 손이 기억하는 것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전화번호처럼. 눌러도 닿지 않는 번호인데도 손이 먼저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아이를 안고 오래 거기 서 있다. 그리고, 닫힌 문 쪽을 오래 바라본다.


끝.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