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에게 은진 송씨 이야기를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작은아버지는, 그 집안 사람 하나가 아직 송학리에 산다고 했다.
송학리는 논이 넓게 펼쳐진 동네였다. 겨울이라 논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물어물어 찾아간 집은 기와가 파랗게 칠해진 낡은 집이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개가 먼저 짖었고, 한참 뒤에야 허리가 굽은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나는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 전성수의 첫 부인이 이 집안과 가까운 분이라고 들었다고 말씀드렸다.
“성수 씨 돌아가셨제?”
“예. 오래됐습니다.”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그분의 육촌 동생이라고 했다. 방은 작고 따뜻했다. 벽에 낡은 달력이 걸려 있었다.
은진 송씨 이름은 춘희였다. 아버지가 평생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름. 열여섯에 시집을 갔다고 했다. 분모골은 우물이 없어, 겨우 초가를 짓고 살림을 마련했다. 두 집은 원래 어른들끼리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고 했다.
노인은 몇 번 언니를 보러 갔던 기억을 더듬으며, 아버지가 키가 크고 말이 몹시 적은 사람이었다고, 인사를 하면 고개만 한 번 숙이고 말았다고 했다.
무섭지 않았느냐고 언니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아니라고 했단다.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조용한 사람이라고. 그 둘은 다른 거라고. 웃는 걸 자주 본 것은 아니지만, 얼굴에 웃음 자국 같은 것이 남아 있었다고도 했다.
전쟁이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그것이 국군인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끌려가듯 징집됐다. 새벽에 송씨가 밥을 지어 냈고, 아버지는 수저를 놓으며 짧게 한마디 했다.
“잘 먹었네. 다녀올게.”
그게 다였다. 그러고는 일어나 나갔다.
송씨는 그 말을 여러 번 했다. 인사도 아니고 약속도 아닌 그 말을, 새끼 하나 없이 몇 년을 더 붙들고 살았다고. 전쟁 통에는 빨갱이들이 무서워 피신해 와 지낸 적도 있었다. 아버지가 떠난 이듬해 여름, 은진 송씨는 돌림병을 앓다가 한 달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떴다. 약도 제대로 써 보지 못했다. 칡뿌리를 캐다 달여 먹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덤은 지금도 송씨 집안 선산에 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나고, 찾아갔던 무덤 이야기도 했다. 송씨의 무덤에 담배 한 개비가 놓여 있었다. 피우다 만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불을 붙이지 않은 생담배였다.
나는 아버지 생각을 했다. 마당에 앉아 담배 연기를 하늘로 뿜던 아버지를 생각했다. 그 무덤 앞에서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 시작하려다 만 것인지, 처음부터 태울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름도 몰랐던 사람에게 이름이 생겼다. 춘희. 그 두 글자를 입안에서 몇 번 굴려 보았다. 아버지가 평생 부르지 못한 이름.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