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신정리 작은아버지를 찾아갔다. 형이 몇 번 전화를 드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직접 뵌 것은 오랜만이었다. 이장 이야기가 오간 뒤로도 자꾸 마음이 미뤄지던 참이었다.
신정리는 골목의 방향도, 낮은 지붕들의 배치도 예전 그대로였다. 사람만 달라져 있었다. 반쯤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에 화분 몇 개가 줄지어 있었다. 겨울이라 흙만 담긴 빈 화분들이었지만, 정성으로 돌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많이 작아져 있었다. 아버지 형제들 중 가장 어린 사람. 그새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이 그 위로 더 얹혀 있었다. 허리가 굽었고 바짝 마른 걸음이 느렸다. 나를 알아보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방은 따뜻했다. 벽에 걸린 낡은 가족사진들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 몇 없었다. 작은어머니가 뜨거운 보리차를 내오고는 방을 나갔다. 텔레비전이 소리 없이 켜져 있었고, 협탁 위에는 약봉지가 쌓여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했다. 그러다 마치 오래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듯이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육 형제 중 위로 넷이 일제강점기 말엽 군대로, 징용으로 끌려갔다. 큰형이 먼저 일본 어디론가 끌려갔고, 나머지 셋도 얼마 지나지 않아 줄줄이 끌려갔다. 둘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남은 둘도 온전히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하나는 몸이 상해 몇 해를 골방에 누워 있다시피 했고, 다른 하나는 그나마 나아서 혼인을 하고 형편을 일으켰다고 했다.
몸이 상한 쪽은 장가도 못 가고 세상을 떴다. 작은아버지는 잠깐 말을 멈췄다. 참 불쌍한 사람이라고, 그렇게만 덧붙였다.
그때 아버지는 어렸다. 형 넷이 한꺼번에 사라진 집에 남자라고는 아버지와, 그보다 더 어린 작은아버지뿐이었다. 할아버지도 몸이 좋지 않아 자리보전하는 날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니 실상 집을 떠받친 것은 아버지 혼자나 마찬가지였다.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해다 팔고, 논에 나가고, 밭을 맸다. 품이란 품은 다 팔았다.
작은아버지는 그 시절을 말하면서도 자기 몫은 별로 얹지 않았다. 그저 형이 했다고만 했다. 그 말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이 눌려 있을지 짐작이 갔다. 열두어 살 아이가 감당했을 무게를, 내 아들과 겹쳐 생각해 보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남은 형들이 돌아온 뒤로도 집안은 조용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형들은 말이 없어졌고, 그 침묵은 아버지에게로 갔다.
“전씨들이 그려. 말을 안 혀. 니 아부지가 질 심혔지. 원래두 말수가 즉었는디, 시째 성 그렇게 되고 더 읎어진 거여. 전씨 집안이 원래 그려. 말을 잘 안 혀.”
작은아버지가 잠깐 웃었다. 웃음 같지 않은 웃음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버지의 침묵이 타고난 성정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을 걸 사람이 하나씩 사라진 곳에서, 말하는 법을 어딘가에 두고 온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열두어 살 소년이 지게를 지고 논둑을 걷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형들이 하나씩 마당을 나서는 것을 지켜보던 그 아이는, 그 등을 보고도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것 말고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었을 테니까.
나는 아버지의 낫과 호미 자루가 손때에 절어 반질거리던 것을 떠올렸다. 오래 쓴 것들은 쓸수록 손을 닮는다고 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그렇게, 손이 닿는 자리에 쌓여 갔다.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