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 철이 오면 나는 부엌에 자주 들어간다.
시장바구니에 초록잎 한 단이 놓이는 순간, 어릴 적 겨울의 온기가 함께 따라온다. 그때 시골집은 허름하고 비좁아도 따뜻했으며 밥상은 넉넉하지 않아도 사람은 많았다. 어머니는 봄동잎을 한 장씩 떼어 씻고 굵은소금에 절였다. 손이 붉었다. 찬물에 오래 담그다 보면 그렇게 된다. 나는 그 손을 보면서 부엌 입구에 서 있었다. 오른손으로 어슷하게 썬 봄동을 넓게 펴 담으며 무심하게 왼손으로 소금을 치는 어머니는 말없이 웃고 계셨다. 먼발치에서 그 웃음을 지켜보던 나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때 아버지가 장화를 털며 마루에 오르다가 부엌 쪽을 향해 한마디 던졌다.
“손이 고생해야 맛이 난다.”
어머니는 대답 없이 웃었다. 아버지도 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대화였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마당으로 나갔다. 아이에게 그런 말들은 배경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는 내가 봄동과 무생채를 무친다. 무를 썰 때 칼끝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집 안을 채운다. 톡, 톡. 그 소리는 때때로 사람 목소리처럼 들린다. 고춧가루가 하얀 무채를 감싸 붉게 물드는 모습은 단정해서 오히려 아리다. 소금에 절인 봄동의 물기를 빼는 동안 어머니의 말이 들린다.
“물기만 잘 빼도 반은 한 거야.”
내 손도 이제는 늙어 마디가 굵다. 어머니 손을 닮아가고 있다. 찬물에 오래 담갔다 꺼낸 것처럼 붉어지고, 절이는 동안 소금기가 스며든 듯 푸석하다. 어머니는 그 손으로 봄동을 절였고, 나는 이 손으로 봄동을 무친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몸이 알고 있다.
봄동과 무생채 반찬을 차려도 먹을 사람이 없다. 아이들은 이런 반찬을 싫어한다. 아내도 즐기지 않는다. 상을 차려도 젓가락은 하나뿐이라 늘 빈자리가 남는다. 빈자리에 젓가락을 놓았다가 더 쓸쓸해질까 봐 다시 하나를 거둔다. 혼자 먹는 밥은 빨리 식고, 설거지도 금방 끝난다. 끝이 너무 빨라 일부러 천천히 닦는다.
오늘은 취나물도 무치고 싶었는데, 냉장고에 된장이 없다. 된장 하나 없는 집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크게 울린다. 나는 된장이 아니라 어머니의 ‘미리 알아채는 마음’을 잃은 것만 같다.
늦은 저녁 아내가 들어오면서 묻는다. 왜 취나물은 무치지 않았냐고. “된장이 없어서”라고 답한다. 아내는 알겠다는 표정을 한다.
다음 날 아침, 주방에 커다란 양조간장이 놓여 있다. 덤으로 보이는 작은 간장병이 옆에 붙은 채로다. 아내는 내가 간장이 없어 취나물을 무치지 못했다고 해서 샀단다. 냉장고에 간장이 종류별로 세 병이나 있다. 아 젠장. 아침부터 간장 때문에 다툰다. 대단한 다툼도 아니다. 나는 분명히 된장이라고 했다, 아내는 분명히 간장이라고 들었다, 그 차이 안에서 서로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가 각자 방향을 틀고 끝난다. 아내가 먼저 내려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음 엘리베이터에 탄다.
누가 틀린 것은 아닌데, 그게 더 피곤하다. 서로 듣고 있지만 서로 다른 것을 들은 채로 선의를 가지고 엇갈린다. 취나물을 무칠 마음이 싹 가신다. 된장도 없으니 무칠 수도 없다.
퇴근하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취나물이 안 보인다. 채소 칸에 있어야 할 취나물이 유리 반찬통 안에 단정하게 무쳐져 있다. 장모님이 다녀가신 모양이다. 버리려 했던 취나물이 반찬이 되어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참았던 무언가가 울컥 치민다. 고마움인지 서러움인지 구분이 잘 안된다. 맞벌이하는 우리 대신 아이들의 끼니를 챙겨 주시는 분이다. 너무나도 고마운 일이지만, 이 고마움이 쌓이는 것이 무겁다. 고마움이 무거운 것이 되는 나이가 됐다.
맥주 캔을 따는 소리가 빈 주방을 날카롭게 찢는다. 아내는 아직 퇴근하지 않았다. 문 여는 소리에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간 아이들은 각자의 소란 속에 머무느라 문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어제 무쳐둔 봄동과 무생채를 넣어 비빔밥을 만든다. 혼자 앉은 저녁상. 입안의 봄동은 아삭하지만, 씹을수록 단맛보다는 씁쓸한 기운이 입안을 맴돈다.
그때 아들이 주방으로 들어온다.
초등학교 6학년. 이 집에서 가장 눈치 빠른 아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냉장고를 연다. 물을 꺼내 컵에 따라 한 잔 마시더니 다시 넣는다. 그러고는 내 옆에 찰싹 붙어 앉는다.
“아빠, 나 오늘 체육 시간에 피구왕 먹었어.”
나는 맥주를 내려놓는다. 손으로 아이 머리를 한 번 쓸어준다. 아이가 찡그리며 웃는다. 눈이 반달이 된다.
“사랑해.”
아이가 팔짱을 끼며 더 가까이 붙는다. 대답 대신.
그날 밤 나는 오래 깨어 있다. 아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이상한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그런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아직도 다 알지 못한다.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