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분모골에는 원래 우리가 살던 집이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이다. 너른 마당이 있었고, 마당에는 하루 종일 햇볕이 움직였다. 눈을 뜨면 마루에 앉아 마당 가득 찾아드는 아침 햇살을 좇는 일이 일과였다. 외양간 한쪽 끝을 조그맣게 비추기 시작한 햇살이 마당 가득 번지면 점심이었다. 처마 그림자가 뜰팡을 떠나 담 그늘로 숨어 버리면 저녁이었다.
아마 비가 오는 날이었나 보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풀잎마다 물기가 촉촉했다. 아버지는 시오리나 떨어져 있는 마을에 모내기 품을 팔러 가셨다가 저녁 다 늦게나 돌아오셨다. 손에는 영문 모를 헝겊을 칭칭 감았다. 씻지도 않은 채 목침을 베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침침한 등잔불 아래서도 그 헝겊은 빨갛게 물들어 보였다.
어머니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랫목에 앉아 아버지의 손을 들여다보다가, 부엌으로 나갔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무언가를 끓였다. 새벽에 잠이 깨어 어머니를 보았는데, 어머니는 등을 보이고 앉아 아버지의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뭔가를 바르고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 다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마당에 찾아들 때가 되어서도 아버지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헝겊이 동여매어 있던 손은 알아볼 수 없게 부었다. 멀리서 살던 큰어머니가 청개구리를 고아 말린 후 곱게 빻은 가루를 바르면 쉬이 낫는다고 했다. 형과 나는 풀숲이란 풀숲은 다 헤매 다녔다. 그날따라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심심치 않게 눈앞에 찾아들던 청개구리가 그렇게 보기 힘들 수가 없었다.
상처가 아물고 나서 아버지의 오른손 엄지는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납작하던 손가락이 원통형에 가깝게 변했고 손톱은 기형적으로 자랐으며, 손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나무껍질처럼 변했다. 뭉툭하고 딱딱했다. 나는 그 엄지를 볼 때마다 청개구리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손이 그렇게 달라진 뒤, 나는 한동안 내 손을 자주 봤다.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는 그 손으로 호미를 잡고, 낫을 잡고, 지게를 졌다. 그 손이 어떤 다른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됐다.
우리 가족이 그 집을 떠난 것은 내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다닐 무렵이었다. 분모골에는 밭만 남았다. 집은 사라졌고, 마당도 사라졌고, 해그림자를 좇던 아이도 사라졌다. 아버지는 계속 그 밭으로 갔다. 매일. 그 밭은 아버지에게 집이었던 적이 있는 땅이었다.
아버지에게도 일탈의 순간이 있었다. 내가 열 살 때쯤이었나.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분모골 밭을 팔아버리겠다며 덜컥 계약금 200만 원인가를 받아 집에 돌아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처음에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아버지가 증거라도 내밀 듯 계약금 봉투를 던져 놓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형은 방에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는 앞치마로 손을 닦으며 부엌에서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가 또 나왔다. 당신이 제정신이냐고. 그 밭이 어떤 밭이냐고.
아버지는 그 사이에 그냥 앉아 있었다. 맞받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고개를 떨구지도 않았다. 밭을 왜 팔려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마당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그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열 살 아이는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 어딘가쯤에서 마당에 서 있었다.
평생을 흙만 파던 양반이 왜 갑자기 땅을 팔아치우려 했는지, 그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뼛골이 빠지는 밭일이 지긋지긋해 홧김에 벌인 일이었을까. 누군가 부른 좋은 가격에 잠시나마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저, 한 번쯤은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도사 전우치처럼 훌쩍 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버지 생애 단 한 번의 조용한 반란.
결국 그 반란은 어머니가 매수자를 찾아가 계약금을 돌려주고 싹싹 비는 것으로 싱겁게 진압되었다.
그날 저녁 늦은 밥상은 특히 조용했다. 아버지는 밥만 먹었다. 어머니도 아무 말 안 했다. 나도 숟가락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했다. 밥이 어떤 맛인지도 몰랐다.
밥을 다 먹은 아버지는 마루로 나갔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가늘고 길게 뿜어내는 연기가 처마 밑에서 천천히 흩어졌다. 나는 마루 안쪽에서 그 연기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버지의 옆모습이 보였다. 늘 보던 옆모습인데 그날따라 달랐다. 어깨가 조금 낮았다.
다음 날 동트기 전, 아버지는 늘 그랬듯 지게를 지고 다시 분모골 밭으로 향했다. 뒷모습은 여느 날과 다를 것이 없었다. 발소리도, 걸음 속도도. 마치 어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의 혁명은 그렇게 1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그 뒷모습을 기억한다. 기억한다기보다 몸에 새겨진 것에 가깝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감각. 무언가 물어보고 싶었던 감각. 끝내 묻지 못한 감각. 쉰 살이 된 지금도 몸이 먼저 안다.
(계속)
표지사진은 라이테 작가님의 글 ‘아버지의 등’에서 모셔 왔습니다. 작가님 아버님의 등이, 꼭 평생을 땅만 일구다 가신 제 아버지의 등처럼 보여 오래 마음이 쓰였습니다. 사진을 허락해 주신 라이테 작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