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문을 사르륵 열고 몸을 반쯤 내민다. 청량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며 온몸을 상쾌하게 깨운다. 안개가 산골마을을 하얀 구름 솜으로 가려놓은 것 같다. 슬리퍼를 끌고 데크에 놓인 소파에 몸을 깊게 묻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고 턱을 무릎에 올린 채, 안개에 잠식된 산마을을 무심히 내려다본다.
고요한 산골 새벽 대지위로 후두두둑 또 비가 내린다. 올해 유난히 여름비가 자주 찾아온다. 비를 좋아하지만 이렇게 끈질기게 내리는 비는 반갑지 않다. 안개에 덮인 산마을에 마음을 담그고, 무념무상에 빠져있는데 휴대폰에서 알람소리가 울린다. 휴대폰 속에는 새벽형 친구가 보낸, 두 편의 시가 배달되어 있었다.
친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두 시인이 쓴, 똑같은 제목의 시를 보내주었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름다운 시를 읽으니, 내 마음속에 질척한 빗물대신 뽀송뽀송 행복이 스며든다.
예전에 한동안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시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아마 두 딸들이 다 성장하여 거의 같은 시기에 독립했던 때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다정하거나 세심한 어미도 아니었는데, 빈 둥지 증후군에 시달릴 줄은 몰랐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외로울 새가 없다고 늘 큰소리를 치며 살았다.) 네 식구 중 두 명이 빠져나가니 집안은 텅텅 빈 것 같았다. 그러나 딸들의 독립은 막고 싶지 않았다. 때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적은 공감능력을 갖고 사는 남편에게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고, 그 허전한 마음을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읽으며 빈 마음을 메웠다.
20대에는 김남주 시인, 3-40대에는 천상병 시인의 시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했다. 덕분에 내 젊은 날은 외롭지 않았다. 좋은 시는 내겐 소금과 같다. 몇 줄의 짧은 글에 내 마음을 적시면,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내가 살아갈 힘을 얻기도 한다.
두 시인의 시를 읽다 보니, 지난날 시를 사랑했던 날들이 그리워 시집이 갖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시집을 산적이 언젠지도 모르겠다.
큰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 요즘 나태주 시인이 너무 좋아. 정호승 시인 바카라은 많은데, 나태주 시인 바카라은 없어. 네가 한 권 골라서 엄마한테 선물해 주라.” 당당히 요구했다.
큰 딸은 “엄마, 나 요즘 돈 없어.” 하며 장난 삼아 대꾸한다.
오래전에 큰 딸이 미국에서 잠시 공부한 적이 있었다. 바카라을 좋아하는 큰 딸은 공부와 아르바이트에 치여 바카라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래도 틈틈이 갖고 간 바카라은 이미 다 읽어서 더 읽을 바카라이 없다며, 하루에 한편 짧은 시 한 줄이라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SNS가 활발하지 않을 때다.)
그날부터 나는 딸이 돌아올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한 편의 시를 골랐다. 그리곤 한줄한줄 메일로 써서 보냈다. 외로운 타향에서 잠시라도 좋아하는 시를 읽는 시간만큼은, 피로도 외로움도 날아가겠지 하는 어미 마음에 보내준 것인데, 큰딸이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너 어릴 때부터 사준 시집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은데, 늙은 어미가 좋아하는 시집 한 권 선물해 달라는데, 안 사주는 딸이 어딨 냐!!" 며 느낌표 폭탄 문자를 보냈다.
"네. 네. 알았어요. 엄마."
큰 딸이 두 손들고 항복한다.
"곧 검색해서 엄마가 좋아할 만한 바카라으로 보낼게요."
"그럼 그렇지... 이겼다."
승리감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사실은 딸이 권해주는 바카라을 읽고 싶었다.)
역시 좋아하는 시집은 선물을 받아야 더 의미 있고 귀하다.
흐음, 그것도 딸에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