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크리스마스 날, 유기견 센터에서 만난 호박이 어미의 늠름한 자태는 우리나라 진돗개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다 유기견이 되어 7마리의 새끼를 낳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중 한 마리를 입양할 때 어미의 강렬한 저항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미를 떠나야 할 호박이도 가엾지만, 새끼를 잃게 된 호박이 어미가 어찌나 가엾던지, 데리고 오는 내내 잘 키워줄 게를 되뇌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건이 있었으니,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는 우리는 호박이를 입양하기 전 많은 고민을 했었다. TV에서 전혀 관심도 없었던 강아지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보고, 바카라도 읽어보면서 잘 키워보자며 호박이의 행복한 견생을 다짐했다.
이웃집에는 우리 호박이와 비슷한 시기에 입양한 장군이가 있었다. 같은 진도 믹스 견종에 태어난 시기도 비슷하였다. 옆집 장군이 보호자 역시 장군이를 어찌나 애지중지 키우는지, 두 마리의 행복한 강아지가 서로 마주 보며 사이좋게 잘 크고 있었다.
이웃집 아저씨 역시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 자잘한 실수를 했지만, 우리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실수를 줄이도록 노력하였다.
특히 딸들의 간곡한 당부도 있었지만, 음식에 예민한 나는 강아지에게 허용된 사료나 간식만 먹였다. 그러나 옆집 아저씨는 장군이가 사료를 잘 먹지 않는다고 종종 일반 음식을 주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저씨가 먹다 남은 족발뼈를 가져왔다. 장군이가 족발뼈를 잘 먹는다며, 우리 호박이에게도 한 줌 나눠 주었다. 나는 어린 강아지에게 뼈를 주는 게 괜찮을까 걱정이 되어 사양하고 싶었지만, 유독 호박이를 예뻐하는 아저씨의 호의를 거절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사실 그때는 뼈에 대한 위험성은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주면 안 된다는 딸들의 당부가 떠올라 먹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릴 새도 없이 식탐이 많은 호박이는 벌써 한 주먹을 급히 먹어치웠다.
별 탈 없이 잘 놀던 호박이는 그날 밤부터 갑자기 토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내용물을 살펴보니 낮에 먹었던 뼛조각을 토하고 있었다. 호박이는 밤새 울렁거림과 토하기를 반복하여, 호박이도 나도 거의 밤을 새웠다.
새벽이 되자 호박이는 토하고 싶어도 더 이상 내용물이 안 나오는지, 헛구역질만 계속 해댔다. 가끔 힘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나는 벽시계만 거푸 쳐다보았다.
동물 병원이 문을 열자마자 남편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다행히 동물병원은 한가했다. 벽 쪽에 나란히 놓인 케이지 안에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의사는 강아지를 돌보느라 우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수의사 등에 대고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급해요.'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챈 직원이 그에게 다가가 뭐라고 속삮였다.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보고 진료실로 들어오라고 하였다.
수의사에게 호박이의 증상을 얘기하고 족발뼈를 먹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간을 약간 찌푸리더니, "이렇게 어린 강아지에게 뼈를 먹이면 어떻게 합니까" 하고 낮은 목소리로 우리를 나무랐다.
"네. 할 말이 없네요."
나는 한숨을 쉬면서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호박이를 진찰대에 올려놓고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그는 우선 엑스레이를 찍어 보자고 하였다. 잔뜩 긴장한 호박이가 불안한 듯 몸을 떨며 엑스레이대에 누워서 발버둥을 쳤다.
잠시 후 엑스레이 사진을 살펴보던 수의사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뱃속에 있는 커다란 뼈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른 자잘한 뼈들은 토하는 과정에서 모두 나왔는데 큰 뼈 두 개는 소화를 못 시키고 그대로 위장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두면 대장으로 내려오다가 큰일 날 수가 있다며 수술로 뼈를 꺼내야 한다고 하였다.
“수.. 수술이라니요? 그럼 호박이의 배를 갈라야 한다는 말인가요!?”
상상도 못 한 의사의 말에 나는 너무도 놀라 어쩔 줄 몰라하며 그에게 호소하였다.
"선생님, 어떻게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이렇게 어린 강아지를 어떻게 수술시켜요?!"
그러나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야속한 대답만 돌아왔다. 그러면서 수술비용도 꽤 나온다며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만만치 않은 수술비도 당황스러웠지만, 호박이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의사는 빠르게 수술 준비를 하였다. 마취 주사를 맞고 점점 힘이 빠져가는 호박이를 바라보니 마음이 아프고 속이 상해 눈물이 나왔다.
남편과 나는 대기실에서 호박이의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수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호박이가 회복될 때까지 얼마나 힘들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보호자를 잘못 만나 이렇게 고생을 하는구나 하는 자바카라이 끊임없이 들었다.
안쓰럽게도 넥카라를 하고 수술실에서 나온 호박이는 마취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수술을 했으니 당연히 입원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퇴원을 하라고 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어떻게 돌봐야 하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낯선 곳에 두고 가느니 차라리 집에 데리고 가는 것이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박이가 아플까 봐 품에 안고 조심조심 차에 올라탔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호박이는 미동도 없이 내 품에 안겨 있었다. 차가 흔들리면 강아지가 아플까 봐 남편은 차를 천천히 몰았고 커브길도 완만하게 돌도록 애를 썼다.
집에 와서도 나는 호박이를 차마 바닥에 내려놓지 못하고, 완전히 마취에서 깨어날 때까지 꼼짝 않고 품에 안고 있었다. 얼마 후 호박이는 정신이 들면서 통증을 느꼈는지 바둥거리며 내 품을 벗어나려고 했다. 나는 살그머니 호박이를 놓아주었다.
호박이가 내 품을 벗어나 두어 발자국을 떼더니, 순간 홱 뒤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신경질적으로 캉캉 짖으며 원망의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마치 왜 나를 이렇게 아프게 했냐며 항의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말없이 호박이를 바라보았다.
호박이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괴로워하며 긴긴밤을 지새웠다.
아, 아.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튿날, 고맙게도 호박이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였다. 넥카라만 불편해할 뿐 이리저리 잘 돌아다녔다. 수술로 꿰맨 자리가 터지면 어쩌나 하는 내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밥도 잘 먹었다.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어려운 수술을 잘 견뎌낸 착하고 예쁜 우리 호박이는 2주간의 불편한 넥카라를 잘 참아냈다. 아니, 넥카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마구 뛰어다니고, 머리를 부딪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리를 흔들며 씩씩하다.
호박이의 회복이 생각보다 빠르게 되니 남편과 나는 한시름 놓게 되었다. 그제야 호박이 소식을 딸들에게 전하며, 어린 손자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함구령을 내렸다. 두 딸들은 함께 맘 아파하며 서로가 호박이 수술비를 내주겠다고 나섰다. 우리 가족 모두 호박이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한 마음이다.
호박아, 이제 무탈하게 잘 살아보자.
호박이의 행복한 견생을 위하여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