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가운 손님

by산너머 작은집


왁자지껄했던 산골이 다시 고요해졌다.


여덟 가구가 사는 산골짜기에는, 세 가구만 상주하고 나머지는 주말에만 다녀간다. 평소 주말이라도 어른들만 왔다 가니 조용하긴 마찬가지인데, 이번 주말에는 어린아이 목소리가 산골을 울렸다. 바로 하나뿐인 우리 손자다. 산골에 오는 아이가 손자 하나뿐이니 온 동네의 귀여움을 독차지한다.

윤수는 인사성도 밝고 명랑 쾌활하다. 무엇 하나에 빠지면 끝장을 보고 마는 성격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넘기를 손에서 놓질 않는다.


하필 윤수가 와 있는 동안은 비가 계속 내렸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윤수는 줄넘기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났고, 결국에는 한 칸짜리 방 안에서 줄넘기를 돌려댔다.


좁은 방안에서 줄넘기로 온갖 재주를 부려대던 아이는 제 재주를 할어니한테 자랑하고 싶어, 할머니의 시선까지 통제한다. 틀리면 다시 하고 틀리면 다시 하기를 반복하여, 결국엔 완벽한 기술을 보여준다. 윤수의 줄넘기를 피해 가족들이 구석에 박혀있어야 했지만, 모두들 윤수의 재롱에 즐거운 얼굴이다.


평소 발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는 아파트에서 벗어난 윤수는 마음껏 뛰고 마음껏 소리 지른다. 수박과 참외를 따러 텃밭으로 뛰어다니고, 맛있는 옥수수를 먹으며 시골 생활을 즐기는 손자는, 강아지 호박이와 물총놀이를 하며 풍부한 자연을 온몸에 바른다.


내가 꿈꾸었던 행복이다. 물론 우리 부부가 자연이 좋아서 시골 주택을 마련했지만, 내 아이들이 도시에서의 고달픔을 잠시라도 잊고,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을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다. 비록 9평짜리 작은 공간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우리들만의 산속 별장이다.


비가 많이 와서 철철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마당에 설치한 대형 텐트 속 평상에 모여, 빗소리와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온 식구가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텃밭에서 방금 따온 상추와 고추, 오이, 명이 나물 장아찌를 놓으니 밥상이 가득하다.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



비가 조금 주춤해지기 시작한다. 윤수 성화에 야구 배트와 인라인 스케이트를 가지고 읍내로 나갔다. 인라인 스케이트장에는 벌써 여러 명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고 배드맨트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인조 잔디가 잘 깔려있는 넓은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다. 우선 야구부터 하기로 하였다. 한적한 시골에 있는 커다란 운동장은 우리 윤수의 맘껏 야구장이 되었다.


탕탕 야구배트를 휘두르면 야구공이 저 멀리 날아가고, 윤수의 마음도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 뛰고 소리 지르며 야구 방망이를 쉴 새 없이 휘둘렀다. 지치지 않는 손자와는 달리 딸과 사위는 아이와 놀아주느라 파김치가 되었다. 인라인 스케이트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윤수는 벅찬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야호~!! 홈런이다!!!


“할머니, 우리 동네에서는 야구를 마음껏 할 데가 없어. 공을 세게 치면 공이 도로에 날아가거나 사람들이 맞을까 봐 할 수가 없었는데, 여기선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았어.”

“그럼 너 할머니랑 여기서 살자. 시골에서 학교 다닐래? 하고 장난 삼아 물어보니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도… 우리 집에서 살 거야. 우리 집이 더 좋아.”

“그래, 자주 여기 와서 놀면 되지. 할머니가 시골집 정원 예쁘게 꾸며 놓을게. 이담에 크면 색시랑 아기들 데리고 와서 재밌게 놀아.”

“알았어, 할머니. 내가 크면 아기들 낳아서 데리고 올게.”

“그래, 그때 되면, 할머니는 없겠지만 너희들이 잘 가꾸고 살아야 돼.”

갑자기 조잘거리던 윤수의 대답이 없다. 옆에 앉은 윤수를 힐끗 보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눈가를 훔치고 있다. 난 너무 깜짝 놀라 얼른 윤수를 안아 주었다.

“알았어, 알았어. 할머니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즐겁고 정신없던 이틀이 지나고 아이들이 떠날 시간이 되었다. 이것저것 꾸러미를 싸서 트렁크 가득 실었다. 빠뜨린 건 없는지, 좋은 것 한 개라도 손자에게 더 먹이고 싶어서 아껴 두었던 것을 다시 한번 챙겨 보았다.


마침내 아이들이 떠났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들 새도 없이 온통 헤집어 놓은 집을 정리하기 바쁘다. 청소, 빨래 등등 윤수가 어질러 놓은 집안일과 텃밭에서 따온 작물등 정리를 하고 남편을 위한 식사 준비를 끝냈다.

휴~~커피 한 잔을 타서 막 한시름 놓고 있는데 띠링, 딸한테 문자가 왔다.


“잘 도착했어요.”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