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짜나부리 1일차
새벽에 일어나 짐을 챙겼다. 호텔 프런트에 캐리어를 맡기고, 우리는 각자 배낭을 메고 나섰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깐짜나부리’였고, 이곳으로 가는 기차는 하루에 두 번인데 반드시 오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만 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거리에 왕래하는 차들이 많았고, 거리의 많은 가게들은 아침 장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하루를 바쁘게 여는 사람들 사이로 부녀는 길을 나섰다.
“오늘은 완벽하게 배낭 여행객이네.”
캐리어를 맡기는 서비스를 이용한 덕분에 짧게라도 우리는 배낭 여행객의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아빠가 좋아하는 여행의 낭만을 채울 수 있을 거 같았다. 젊은 시절의 아빠는 빈 몸으로 여행을 떠나는 낭만이 있던 사람이었다. 자주 해주시는 무용담 중 하나가 어느 섬에 들어가 빈 몸으로 며칠을 여행하다 오셨다는 것이다. 내가 어려서 아빠를 따라 낚시를 다니다 하루는 젓가락이 없어서 나뭇가지를 잘라 라면을 먹은 적이 있는데, 지금까지도 그 일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즐겁고 특별한 추억이었다. 그래서 호사스러운 여행도 당연히 좋지만, 이런 배낭여행의 낭만도 꼭 즐기고 싶었다. 10분 정도를 걸어 기차역 앞에 도착했고, 역 앞 시장에서 아침 겸 먹을 간식을 구매했다.
깐짜나부리로 가는 기차는 오래된 완행열차라서 시설이 현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게 또 여행의 낭만이 되기는 했다. 에어컨이 아닌 선풍기가 돌아가는 실내, 딱딱하고 작은 나무의자, 그리고 다소 느릿한 속도의 기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좋았다. 기차는 약 3시간 정도를 달렸다. 아빠와 나는 창밖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이야기도 하고 간식도 먹었다.
“다리에 들어간다.”
깐짜나부리까지 우리가 온 것은 ‘콰이강의 다리’를 가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탄 기차가 깐짜나부리역에 잠시 정차하고, 많은 관광객들이 탔다. 이제 다음으로 향하는 곳이 바로 콰이강의 다리였다. 태국 여행 전에 아빠에게 보여드렸던 여행 영상 중에서 아빠가 흥미롭게 보던 곳 중에 하나였다.
“어후, 여기에 철길 놓다가 많이 죽을 수밖에 없겠다. 우선 너무 덥다.”
“더운 것도 더운 거지만, 여기서 어디로 도망을 가겠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죽음의 철도로 불리는 구간으로 들어가니 기차는 속도가 느려졌다. 강이 보이는 절벽길에 놓인 철도. 위태하게 기차가 지나가고, 그 밖으로는 강의 절경이 펼쳐졌다. 이 철도가 가진 피의 역사와 달리 풍경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눈이 부셨다. 위태로워 보이는 절벽길을 지나고 기차는 역에 정차했다. 우리는 내려서 기차로 지나온 철길을 걸어서 되짚어갔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의 장면을 떠올리며, 사람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곳에서 우리도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바로 옆의 식당으로 향했다.
“맥주나 한 잔씩 하자.”
더워도 너무 더웠다. 시원한 맥주가 간절한 순간이었다. 맥주로 목을 간단히 축이고 앉아 있으니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한결 시원해졌다.
“딱 술 한 잔 먹기 좋은 덴데. 맥주 먹으러 일로 와야겠다.”
“오기가 너무 힘든데?”
“그래도 이게 어디야, 맥주 한 잔 먹기 딱 좋네.”
식당 밖으로 강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아빠의 말대로 맥주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자리 잘 잡았다. 저녁엔 운치 있겠는데, 조명만 있으면.”
“근데 문제는... 기차가 없어.”
우리가 방콕에서 타고 나온 7시 기차 다음엔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그 두 기차가 종점까지 들어갔다가 나오면, 이곳을 지나는 기차가 없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아빠가 말하는 저녁의 운치는 즐길 수가 없었다. 대신 우리는 치킨을 먹으며, 낮술로 시원하게 맥주 한 병을 비웠다.
“서울 가면 로또 하나 사야지. 다시 오게.”
“장박 하게?”
“여기서 한 삼 사 개월만 있으면 재미있을 거 같아.”
아빠가 웃으며 농담으로 한 그 한마디가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즐거우신지를 말해주었다. 이후로도 아빠는 로또를 사야겠다는 농담을 더러 하셨고, 최근에도 로또를 맞춰서 태국에 집을 사야 하는 데 하는 소리를 농담으로 하신다. 태국에 집을 사 드릴 수는 없지만, 언젠가 또 더 다양한 곳을 아빠를 모시고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릴 때 아빠는 딱 50대까지만 일을 하고, 나와 엄마가 먹고 살 기반을 만들어 둔 다음엔 여행이나 다닐 거라고 말씀하셨었다. 그게 본디 아빠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삶은 아빠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 여행이 작게나마 아빠의 로망을 채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나는 생각했다.
“진짜 기차여행했네. 덜커덩 덜커덩.”
“그지?”
“KTX 타면 구경도 못해. 슁~ 지나가 가지고.”
오래되고 느릿한 완행열차가 역시나 아빠의 로망엔 맞았던 거 같다. 이후로도 아빠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그런 낭만들이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 몇십 년 만에 열차 여행 했네.
- 평지라 앞이 안 막혀 있어서 구경하기도 좋잖아.
- 카메라 가지고 망원렌즈 가지고 딱 찍으면 멋있겠어.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잠시 동안 더 그 풍경을 즐겼다. 그리고 종점에서 돌아 나오는 기차에 다시 몸을 실었다. 한 시간 정도 거슬러 칸차나부리역으로 돌아가는 거였는데, 다시 우리가 지나온 콰이강의 다리를 지날 예정이었다. 아빠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 보이셨다. 다시 다리를 진입할 때가 되자 아빠는 핸드폰을 들고 아예 기차 문 쪽으로 나가셨다. 나는 다소 피로했으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는데, 잠시 뒤에 잔뜩 상기된 아빠가 들어오셨다.
“사람들이랑 다 하이파이브했어!”
기차가 놓인 철길 중간중간엔 사람들이 서있을 수 있는 공간이 있는데, 이 다리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거기에 서서 지나가는 우리 기차에 인사를 한다. 아까는 자리에 앉아서 창밖으로 그런 사람들을 구경만 했었는데, 이번엔 아빠가 문가로 나가 서서 그들과 직접 인사를 한 것이다. 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아빠는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내미시며 그 장면을 찍었다고 보라고 하셨다.
"... 안 찍힌 거 같은데?"
“어? 어디 있지?”
아빠가 말한 장면은 핸드폰에 없었다. 딱 자리에서 일어나 문까지 걸어가시면서 찍은 영상은 있는데, 너무 즐거우신 나머지 녹화 버튼 누르는 것을 실수하신 듯했다. 결국 아빠의 그 신나는 순간은 기록되지 못했다. 자신의 촬영 실수를 알게 되신 아빠의 얼굴이 금방 굳어졌다. 자신이 왜 그런 실수를 했나 속상해하시며 급속도로 실망한 얼굴이 되셨다.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찍다가 아빠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 젊어서는 카메라와 친했던 아빠는 이번 여행엔 DSLR도 포기했고, 핸드폰만으로 기록하시기로 했는데 그마저도 이렇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 아빠의 순간들을 내가 기록해 드릴 생각이었는데, 아까 잠시 일어나 아빠를 따라나설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비록 그 순간을 기록을 하지는 못했지만, 달리는 기차 안에서 다리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인사한 일이 아빠의 기억에는 오래 남으리라고 생각했다. 기차는 곧 칸차나부리역에 도착했다.
딸랑구투어 가이드의 메모
태국엔 짐을 배송해주는 서비스가 있는데요. 호텔에서 공항, 공항에서 호텔만 배송해 주는게 아니라, 호텔에서 호텔로도 배송이 가능해요. 제가 이용한 서비스는 에어포텔이라는 업체였는데, 이곳이 여러 지점에서 짐보관 서비스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방콕 호텔 프론트에 짐을 맡기고, 다시 방콕에 돌아올때까지 받을 수 있도록 예약을 했습니다.
프론트에 짐을 맡기고, 이메일로 업체와 소통하면 되는데요. 이전에도 공항으로 배달하는 서비스는 써봤는데, 이렇게 날짜를 두고 짐을 맡겼다가 받는 것도 가능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다시 방콕으로 돌아올 때는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었는데, 호텔이 아니여도 받을 수가 있었어요. 그래도 만약에 숙소가 에어비앤비라면 예약하실때 확인은 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