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콩 1일차 part 2
원래 첫날의 계획은 이랬다. 왕랑시장에서 식사를 하고, 강 건너 편인 왕궁과 왓포를 보려고 했다. 나의 방콕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였는데도, 어쩌다 보니 제일 유명한 왕궁과 왓포를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의 여행 출발 직전에 태국 왕실에 국상이 생기는 바람에 왕궁 관광은 또 물거품이 되었다. (아무래도 그래서 방콕엔 또 가야 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왓포만이라도 보기 위해서 나는 아빠를 모시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서울에 한강이 있듯이 방콕엔 짜오프라야 강이 있다. 짜오프라야 강은 꽤 크고 넓은데, 한강과 달리 강가 바로 옆에 건물들이 있고 선착장이 붙어 있어서 배를 대중교통처럼 이용할 수가 있다. 우리는 배표를 끊고, 커피를 마시면서 배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배를 기다린 시간에 비해 건너가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옛날 버스 안내양같네.”
배에서 내리며 아빠가 말했다. 우리가 탄 배에 승객이 많았는데, 배가 빨리 정박해서 승객이 타고 내려야 해서 검표를 하는 직원이 승객들을 자리에 앉히고,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갈 준비를 시키고 정신이 없었다. 아빠는 그게 마치 옛날 버스의 안내양 같다며 웃으셨다.
‘왓포’는 커다란 와불이 있어서 유명한 관광지답게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우리의 불교 사찰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태국 사원은 같은 종교도 나라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볼 수 있어서 내가 흥미롭게 보는 곳이었다.
“저 석상 같은 것은 중국 영향을 받은 거라고 하고, 저건 태국 스타일이고...”
나는 사전에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빠에게 설명하면서 와불이 있는 본당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가자 거대한 불상의 머리가 보였다.
“어마어마하다.”
“근데 재미있는게, 불상이 우리랑 스타일이 다르잖아. 생긴 게.”
“그지.”
“탱화도 스타일이 달라. 탱화에도 금색이 많아.”
사람들이 많은 데다 다들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는 아빠에게 와불의 발끝 쪽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래야 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와불의 발끝에 가까이 갔을 때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불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와불의 발바닥을 아빠에게 설명했다.
“발바닥에 백팔번뇌를 자개로 넣은 거래.”
내가 투어 가이드가 된 이상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아빠께 어느정도 설명은 드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전에 설명이 필요한 곳은 인터넷을 검색해서 중요한 포인트들을 기억해두었다. 왕궁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던 것은 사실 그런 이유도 있었다. 열심히 공부까지 했는데, 써먹지 못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발바닥의 백팔번뇌 자개 그림까지 관람을 하고 난 다음엔 소원을 빌기 위해 동전 그릇을 구입했다. 와불의 뒤를 돌며 작은 항아리들에 동전을 넣으며 소원을 빌 수 있는데, 왓포에 와서 꼭 하고 싶었던 일 중에 하나였다.
“여행 잘 끝내게 해 주시고.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시고...”
이후로 나는 가까운 친구 한 명 한 명의 행복과 내 직업과 관련한 소원을 빌었다. 많은 항아리에 소원을 가득 빌 거라 마음을 먹고 갔던 나지만, 사실 소원을 빌다 보니 그렇게 많은 것을 빌게 되지는 않았다. 그저 가족의 건강과 행복, 나의 일이 조금 잘 되었으면 하는 것.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의 안녕을 기원하고도 항아리는 많이 남았다. 남은 항아리엔 다시 비슷한 소원을 결국 반복해서 빌게 되었다.
건강하게 해주십사, 건강하게 해주십사. 무탈하게 해주십사, 무탈하게 해주십사.
내가 소원을 비는 동안, 앞서 걷던 아빠는 무슨 소원을 간절하게 비셨을까. 무엇을 비셨는지 묻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가 그때 소원을 잘 빌어서일까? 최근에 아빠의 건강에 적신호가 떠서 고비를 넘기는 일이 있었는데, 무탈하게 잘 넘겼다.
“이거 멋있다.”
이후로 우리는 경내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태국 사찰의 독특한 양식의 탑 앞에서 아빠와 나는 번갈아 가면서 사진을 남겼다. 타일 조각을 붙여 장식한 탑을 들여다 보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아빠는 사진찍기 좋은 곳만 보이면 멈춰 섰다. 곳곳에서 우리는 사진을 많이 남겼다.
“관광으로 먹고 살 만 하네.”
왓포를 본 아빠의 소감을 간략히 하면 그랬다. 이십 분을 그렇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더니, 아빠가 조금 지친 기색이셨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한숨을 고른 후에 왓포를 나와 근처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다시 온 길을 되돌아서 왕랑시장에서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태국 여행을 하면 모두가 이야기하는 것이 마사지고, 나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활동이었다. 당연히 아빠도 좋아하시리라 생각을 하고 발 마사지를 받았지만, 생각보다 아빠의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래서 이후로 우리 여행에서 마사지는 쏙 빠지게 되었다. 우린 다시 숙소로 돌아갔고, 잠시 쉰 다음 숙소 옆에 있는 무카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무카타 자체가 한국인에겐 너무 잘 맞는 메뉴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간 매장이 완전 현지식 뷔페여서 고기가 다양한 종류가 있었는데 그게 딱 아빠의 취향이었다.
가게에 들어가서 주문부터 해 놓은 딸은 정신없이 다시 호텔로 왔는데, 가지고 있던 현찰이 마침 똑 떨어진 상황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가 관광지역이 아닌 곳이다 보니 가까이에 환전소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호텔 체크인 시 보증금을 내게 될 것을 계산하지 못하는 바람에 가지고 있던 바트가 부족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일전에 고모에게 용돈으로 받은 달러를 들고 나왔기 때문에 나는 프론트 직원에게 달러와 바트를 바꿔 줄 수 있는지 물었고, 그렇게 보증금을 바트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달러로 교환한 다음 다시 식당으로 뛰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