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탐색

무소유의 연장선. 무잼

by엉금

“다들 무슨 재미로 살아가냐?”


13시 3분 전. 그는 대화방에 의문을 던진다. 친구들이 바삐 모색하기 시작한다. 치킨. 여자. 저마다 1분 간격이다. 저리 이타적인 사람을 친구로 두다니. 그는 복받았다. 나는 이타적이고. 치킨이라는 단어를 보고 흐름을 읽었다. 가십거리로 빠지겠구나.


그에 편승하고자 시답잖은 단어를 뱉었다. 이윽고 짧은 담소가 오가는 도중. 암호명 ‘여자’는 떠올린다. 1주 정도일까. 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했지. 마냥 시시한 말은 아니구나. 한발 늦게 인지한다. 나는 어떨까. 혹은 어땠을까. 자신을 둘러본다.


그가 말하는 재미.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한다. 가벼운 윤활이 필요하면 취미. 웃음기 없이 말하면 목표. 혹은 동기로. 웃음기 없는데 그게 어떻게 재미냐고. 으레 왁자지껄한 이미지를 그리기 마련이나. 여기선 좀 후하게 기준을 내리려 한다. 과정 동안에 한정되지 않고. 도달을 상상할 때 미소가 나오는. 기쁨의 여운까지 포함해서 다룬다.


내 인생에서 비중을 얼마큼 차지하는지. 혹은 했는지. 존재 자체의 여부도 중요하나 이걸 돌아본다. 우선 취미는 어떨까. 손 들고 횡단보도를 걷던 그때를 시작으로. 곰곰이 거슬러 올라간다. 게임이나 예능. 가볍다고 하기에는 끈적거리는데. 뭐 대화 수단으로서 훌륭했다. 예능, 특히 공개 코미디. 월요일마다 반에서 빼놓기 힘든 주제였다. 유행어 따라 하기는 예사요. 어느 대사가 재밌고 누가 기억에 남고.


방구석, 아니 교실구석 평론가에 빙의했다. 특히 녀석과 이에 대해 자주, 또 중학생치고 깊은 담소를 나눴다. 정도가 얼마나 깊었으면. 당시 녀석의 목소리가 선명할까. 이거 보면 지 이야기라 바로 알아챌 터. 물론 녀석은 읽을 리 만무하다. 그래. 텔레비전은 충실한 보조제였다. 교우 관계에 있어. 관찰 예능을 시발로 지상파가 시들어가는 현. 그래서 내가, 나이 먹고 그게 힘들어졌는지.


농도를 올려서. 곧 내 삶이라 자부할 취미가 있었나. 앞서 말한 지렛대를 넘어, 목적이 된 그 자체. 자동차가 떠오른다. 컴퓨터를 통해 관련 자료와 소식을 찾아서 보고. 대다수는 고물이라 치부할 30년 묵은 차. 길 가다 발견하면 놀라고 감동하고. 확실히 정도가 상당하다. 내 키가 멈추고 짚어보아도.


앞서 말한 윤활과 달리 주위 노출이 없었지. 본능이었다. 그것은 흥미가 식을 무렵에도 일관된 성질이었다. 차가 없어지면 죽을까. 저런 극단적인 가정까지 세워본 적 없으나. 상당히 묵직했다고 자명하다. 다른 재미와의 구분. 그도 여기서부터 세워지고.


그래, 바로 게임이랑 대비된다. 시작은 그렇듯 개념에 충실했다. 그것을 매개로 하여 시간을 보냈지. 고교일까 대학일까. 나이 먹음을 인지한 어느새. 도구로 변질되어 버렸다. 관계 진전 기능을 표방하는. 향락이 아닌 수행을 했다. 내 학창 시절에서 ‘물고기방’이 부피를 맡지 않는 이유다. 재미없는데 왜 굳이 붙들고 있나. 전자오락 선수도 아니고. ‘쌀먹’이 목적이면 모를까. 언급되지 않은 이외도 사정은 비슷했다.


13시 3분 후. 나는 그에게 전한다. 저건 뻥이고, 딱히 삶의 재미가 없다. ‘그냥’ 산다. 재미 찾으려고 하면 더 재미없어져. 태어난 김에. 이러니까 낫더라. 고심하지 않고 바로 적은 다섯 마디. 1년 정도 지났을까. 얼마 안 된 시점인 지금. 필자가 생존의 뜻을 정립한 지. 그러고 보니 따로 적어 둔 기억이 없다. 문득 인지한. 그러니까 잠시 떠나갈 내용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잘 됐다 마침. 글의 갈피를 더욱 선명히 잡게 된다.


그냥이라는 부사. 우리는 이걸 되씹어야 한다. 소가 되어야 한다. 취미든 목표든 동기든. 그들이 삶으로 향한다면 위험하다. 찾지 못할 경우부터. 얘는 더 말할 이유가 없다. 결국 허무로 수렴하니까. 거칠게 말해본다. 가진 물건이 쓸모없게 되면 어떻게 처리하는가. 버리거나. ‘당근’ 하거나. 어떤 방식이든 내 품을 떠난다. 보아라. 목숨을 양도할 수 있는가. 못 하지.


이렇게 선택지는 하나가 남는다. 한데 그에 이르려면 묘사하기 힘든 용기를 수반하니. 이후를 대체할 그것을 찾으면, 사정이 한결 낫다. 동사를 보아라. 좋다고 했지, 옳다고 하지 않았다. 말장난일까. 저 멀리서 꺼낸 단어. 비중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곧 삶이 된다. 이 문장에 한술 더 떠 궁극을 첨가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나처럼 무엇을 두지 않고 산다. 이게 정답은 아니다. 다만 삶을 집어삼키는 매개.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상실의 크기는 매개의 비중을 따라간다. 필요 이상으로 몰입하면 그것은 자신도 모르는 동안 커진다. 이 문장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곧 내가 삶의 재미를 찾지 않는 근거지.


몰입을 스스로 끊어내지 못할까 봐. 거기에 따른 후폭풍을 몸소 겪어보았기에. 나는 무엇으로 살아간다. 파고드니 얼마나 위험한 문장인가. 별 볼 일 없어 보였는데. 단순한 태도의 중요성을 느끼는 지금이다. 선명하게 뼈저리게.


인생 무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