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가깝고 위험한 판도라
인간은 늘 생각한다. 각양각색의 형태로. 또 그건 행동에 따라. 피아노 다룰 때는 여기서 강조를 넣어야지. 갈비를 뜯을 때는 덜 익혀서 그런지, 정말 질기네. 오늘따라 왜 강의실 냉방이 약하지, 세금 다 썼나. 이런 식으로. 여럿이 떠오른다. 쓱 보면 피드백으로. 감상으로. 의문으로. 다수의 모양으로 나타난다. 그럼 아무 일. 하나를 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몸을 가만히 두는 상태. 자세히 정의 내리면 이 정도겠다. 사실 예시부터 떠올리고 정의를 고민했을지 모른다. 자려고 침대에 눕기. 아, 조건을 덧대야겠다. 휴대전화는 필히 머리맡에서 초간하게 둔 채로. 이런 상황이 갖추어지면. 인간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필자는 초점이 나로 향한다. 시럽이 있냐. 손님의 질문에 우물쭈물한 티를 내었는지. 동료와 대화 도중. 굳이 필요 없는 말을 뱉었는지. 화가 날 상황에서. 내 의견을 아쉽지 않을 만큼 피력했는지. 지나간 하루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회상할 오늘이 고갈되면. 시제가 바뀌는 일만 남았지. 미래 혹은 과거로.
앞날은 크게 볼 일 없다. 긍정을 가정하기. 나 복권으로 무얼 하지. 대충 이런 느낌 아닌가. ‘행복회로’는 퍽 재미없다. 나에게 있어 각본 쓰는 행위에 그칠 뿐. 노후 대비라는 복잡한 이야기 따위 차치하자. 까마득한 앞날 고민하며 침울해질 의무가 있는지. 뭐 사서 걱정이라도 할 수야 있겠는데. 본인은 그런 취미 안 둔다.
과거는 어떤가. 재미는 고사하고 소재부터 방대하다. 아니. 그래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식사가 이유식에서 학식으로 바뀔 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이 지나갔는가. 해외여행 혹은 마시고 토하고. 이런 특별한 날에서 그치는가. 운수 좋은 날, 새우 말고 내 등 터진 날, 나무 열 번 찍기, 되로 주고 말로 받기.
일상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겉으로도 특별해 보이는 추억에 가려질 뿐. 회상이 이래서 무섭다. 너무 다양하니까. 우리는 알고 있다. 방 정리 도중 바카라장을 보고. 거기서 졸업 앨범을 꺼내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시간의 속도와 단절되어 버린다. 그렇게, 사진첩을 열고야 만다.
이 사진첩의 존재는 구상에 그치지 않는다. 추상, 이형으로 두뇌 속에 자리한다. 물리적인 그것과 내용물이 다르다. 사진과 영상. 아니지. 이렇게 묘사해야겠네. 내용물의 수가 다르다고. 우리가 흔히 아는 사진첩은 말 그대로 찰나. 영점 몇몇몇몇.... 초의 단면을 포착한 이미지. 그들을 담고 있다. 머릿속에는 동일한 기억이 여럿으로 겹쳐있다. 그 장면들이 하나씩 연속되어 영상으로 보관된다.
문득 생각한다. 사진이 끌리는가. 영상이 끌리는가. 난 영상으로 마음이 더 향한다. 왜 그런가 돌이켜보니 기억하는 데 한층 수월해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 속에 풍덩거리며 빠진 기분이다. 과거의 수영장은 그렇게 입장한다. 수면 시간이라는 입장료를 내고. 이를 뒤집어 적으면, 사진에 대한 몰입도가 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가. 그 답이 나온다.
우리는 흐르는 물체 안에서 헤엄친다. 딱딱한 곳에서 하진 않으니. 물리 관점으로도 애초에 가능할까. 사진, 즉 하나의 이미지로는 전신을 던질 수가 없다. 머리에서 살피는 사진첩은 이래서 덮기 힘들다. 결국 몰입도 문제라는 소리. 그 행위도 회상자에 달렸다. 어디 자리하는지. 기억 속, 혹은 바깥. 1인칭이냐 3인칭이냐. 전자가 당연히 몰입이 잘될 수밖에. 나에게 투영하는데.
본인 이야기를 본인 말고 더 실감 나게 몰입할 사람. 누가 있겠는가. 물론 동네 친구나 애인의 사진첩도 못지않다. 하나하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랄까. 구경하는 행동 자체에서 흥미가 솟는다. 본인의 사진첩은 둘 다 상이하다. 이유도 몰입도. 이미 알고 있다. 배움이 아니라 복습이다.
내 역사는 본인이 제일 이해력 높다. 그 순간의 감정조차 무의식적으로 기억나지. 제2 혹은 제3 인물 사진과 다르게. 경직되며 식은땀이 난다든지, 물통에 뿌린 물감이 퍼지듯 격양된다든지, 부항 20개가 기운을 흡수한 몸뚱어리 같다든지. 그렇게 펼쳐놓은 채로. 눈은 초점을 잃고야 만다.
하나를 두드리려 했는데. 무언가 연달아서 나왔다. 머릿속 사진첩. 이상의 문단은 저 물건이 무서운 이유다. 자칫 할 일을 놓치기도 한다. 솔직해져야지. 가끔은 놓아버린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몰입해서 깜빡하거나. 환멸감에 집어치우거나. 내가 초인이라면. 행동에 감정이 참견하지 않을 텐데.
그래도 거기에 잡아먹힌 새벽은 딱히 없는 요즘이다. 추억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 즐겁게 다루고 싶다면 말이지. 신중하게 결정하자. 끄집어낼 필름과 상영 시간을.
단 조조할인에 넘어가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