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 슈만
1854년 2월 27일 아침, 뒤셀도르프의 집에서 슈만은 피아노 앞에 앉아 며칠 전부터 쓰던 변주곡을 손보고 있었다. 그는 이 주제를 천사들이 불러 주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 선율은 넉 달 전 그가 직접 쓴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에 이미 들어 있던 것이었다. 바깥에서 온 계시라고 믿은 것이 실은 자기 작업대 위에 놓여 있던 재료였다.
그날 그는 집을 나가 라인강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 구조되었고, 사흘 뒤 본 근교 엔데니히의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두 해 남짓을 그곳에서 보내다 1856년 7월 29일에 죽었다. 클라라가 그를 만난 것은 죽기 이틀 전이었다.
입원한 그해 9월, 슈만은 오선지를 보내 달라고 청했다. 이후 그곳에서 파가니니의 카프리스에 피아노 반주를 붙이는 작업을 했고, 코랄을 옮겨 적었다. 곡목이 기록에 남은 마지막 작업은 1856년 1월에 쓴 피아노 푸가인데, 그 악보는 전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도착하는 것은 언제나 결과물뿐이다. 다만 결과물이 과정을 얼마나 감추는지는 예술마다 다르다.
그림에서는 고쳐 칠한 자국이 남을 수밖에 없다. 물감은 덮을 수는 있어도 지울 수는 없어서, 아래층에 먼저 그린 형태가 그대로 갇힌다. 미술사는 이것을 펜티멘토라고 부른다. 뉘우침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암굴의 성모〉가 그런 경우다. 물감 아래를 들여다본 연구진은 지금과 전혀 다른 구도를 발견했다. 성모가 아기 예수를 내려다보고 정면을 향한 천사가 그 아이를 받치는 구도였다. 다빈치는 첫 밑그림을 포기하고 그 위에 두 번째 구도를 올렸다. 접힌 쪽이 완성작 안에 그대로 남아 있다.
소설에서는 읽을 때의 조건이 다르다. 독자는 자기 속도로 읽고 멈추고 앞 장으로 되돌아간다. 월터 옹은 쓴다는 것이 말을 공간에 고정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입에서 나온 말은 발화되는 순간 사라지지만 글은 한자리에 붙박여 언제든 다시 붙들린다. 고정되어 있으니 고칠 수 있고, 고친 뒤에도 앞의 것과 나란히 놓고 견줄 수 있다. 게다가 언어는 누구나 매일 쓰는 재료다. 한 문장을 몇 번씩 고쳐 쓰다 결국 처음 것으로 돌아가 본 경험은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 소설가의 개작이 독자에게 신비로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독자 자신이 그 일을 해 봤다.
음악에는 그 조건이 없다. 옹은 소리가 사라지면서만 존재한다고 썼다. 영원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뒤쪽에 이르면 앞쪽은 이미 없다. 녹음이 있어도 다시 흐르게 할 뿐, 정지된 상태로 살펴볼 수는 없다. 연주회장에 도착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는 완성된 소리이고, 그 소리는 몇 번을 고쳐 썼는지 말하지 않는다. 물론 음악에도 공간에 고정되는 것이 있다. 악보와 스케치가 그것이다. 다만 그것을 읽는 일은 누구나 매일 하는 일이 아니라 따로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과정이 청중에게 도달하지 않으니 남은 자리를 설명할 단어가 필요해졌고, 19세기가 그 자리를 부지런히 채웠다. 호프만은 5번 교향곡을 두고 기악을 가장 낭만적인 예술로 선언했고, 로흘리츠는 모차르트가 머릿속에서 곡을 완성했다는 편지를 지어냈으며, 파가니니와 리스트는 그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연기했다.
증거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판독하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세기에 노테봄이 빈에서 베토벤의 스케치북을 읽어 내고 있었다. 브람스와 가까웠고, 브람스는 그 작업을 대단한 노동이라 평가했다. 노테봄이 〈영웅〉 스케치를 정리하고 내린 판단은 분명했다. 첫 착상들은 평범하고 관습적이며 베토벤다운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그 곡은 그 평범한 재료를 고쳐 나간 끝에 나왔다. 이 발견은 학계 안에 남았다.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두 이야기 가운데 대중에게 전해진 것은 계시 쪽이었다.
문제는 그 과정이 좀처럼 인용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헨델이 메시아를 24일 만에 썼다는 것과 그 24일 안에 옛 이중창을 다시 꺼내 넣었다는 것은 같은 자필 악보에서 확인된다. 인용되는 것은 앞의 것뿐이다. 브람스가 첫 교향곡을 이십 년 넘게 붙들었다는 것은 자주 언급되지만 대개 완벽주의라는 성격 설명으로 마무리되고, 베토벤 다음에 교향곡을 내놓는 일이 그 시기 독일어권에서 무엇을 뜻했는지는 따라붙지 않는다. 슈만이 천사에게 주제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남았고, 그 주제가 넉 달 전 자기 협주곡에 있었다는 사실은 남지 않았다.
나는 작곡을 한다. 오래 그 단어에 눌려 있었다. 왜 나에게는 저런 것이 떠오르지 않는지, 저들에게만 있는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닌지, 애초에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 시기에 내가 한 일 중 지금 가장 아까운 것은 남의 완성본과만 견주며 내 손에 있는 가공되지 않은 재료를 하찮게 여긴 일이다. 재료는 세공을 거쳐야 재료가 되는데, 첫 착상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버렸다. 더 어릴 때는 기준이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이성이 앞서는 편인데, 감정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야 진짜 작곡이라고 여겼다. 뮤즈에 사로잡히는 쪽, 디오니소스 쪽에 서 있어야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내가 읽은 작곡가 이야기에는 고치는 과정이 들어 있지 않았다.
학생들에게서도 같은 것을 본다. 자기 초고를 남의 완성본과 나란히 놓고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다. 비교하는 두 항이 서로 다른 단계에 있으니 결론은 비교하기 전에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 바카라은 그 단어를 걷어내고 그 아래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세어 보는 방식으로 썼다. 마감이 있었고 빚이 있었고 실패한 초연이 있었다. 시벨리우스는 삼십 년을 쓴 원고를 태웠고 로시니는 서른일곱에 그만두기로 했다. 이들이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판단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이 한 일이 내가 하는 일과 같은 종류의 일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역사는 그다음에 온다. 이 곡이 왜 이 길이인지, 왜 이 악기가 여기서 빠지는지, 왜 하필 이 해에 나왔는지를 알고 나면 같은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엔데니히에서 슈만이 남긴 것은 걸작이 아니다. 남의 악보에 붙인 반주와 옮겨 적은 코랄과 제목만 남은 푸가 한 곡이다. 그는 그것을 쓰기 위해 오선지를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