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캘거리에서 첫겨울을 보낼 때 한 목사는
차를 세 번 얼려 먹었다.
처음에는 그런 표현이 맞는지도 몰랐다. 차가 얼었다는 말을 들으면 타이어나 문짝 같은 것이 얼음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떠올렸는데, 이곳 사람들은 밤 기온이 영하 삼십 도 아래로 내려가면 주차장에서 차 앞부분으로 가느다란 전선을 꺼내 건물 벽이나 주차장의 콘센트에 꽂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차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얼어붙은 주차장 위로 전선들만 차와 건물 사이를 이어놓고 있었다. 저녁마다 줄지어 선 차들이 하나씩 벽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여 한참 바라본 적도 있었다.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블록 히터라고 알려주었다. 플러그를 꽂아두지 않으면 아침에 시동이 안 걸릴 수도 있어요.
특히 목사님 차처럼 오래된 차는요.
그 말을 들었는데도 두 번을 더 잊었다.
아침에 차 문을 열고 앉아 키를 돌렸을 때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면 그제야 전날 밤 자기 손에 들려 있어야 했던 전선이 생각났다. 한 번은 청소년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기로 한 날이었고, 한 번은 새벽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세 번째로 차가 걸리지 않았을 때 담임목사는 웃었다.
“이제 기억하시겠죠?”
“그러겠죠.”
그러나 한 목사는 자신이 또 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대체로 그런 사람이었다. 필요한 것은 배우고, 자주 틀리는 것은 적어두고, 상담하는 말은 오래 기억했지만 자기 생활이 조금 불편해지는 것에는 둔했다. 어느 곳에서 살든 처음에는 불편한 것이 있었고, 조금 지나면 익숙해졌다.
고등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 경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논문만을 남겨둔 채 서울로 돌아왔다. 인컴의 절반을 들여 공부시킨 결과냐며 부모님은 실망했으나 서울에서 신학교에 재입학했다. 목사 안수를 받은 뒤 한국어와 영어를 비슷한 유려함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교회가 있었고, 그곳이 캘거리였다.
사람들은 그 순서를 들으면 대개 비슷한 질문을 했다.
경제학을 그만두고 왜 신학을 공부했어요.
왜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다시 왜 캐나다로 왔어요.
한 목사는 질문의 순서를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들어온 질문들이었다.
특별한 대답도 없었다.
“그냥 여기로 오게 됐어요.”
그녀는 대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뒤에 설명이 더 붙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잠시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이어지지 않으면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 흩어졌다.
사람들은 타인의 인생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설명되지 않는 몇 가지를 그냥 두는 일에는 퍽 서툴렀다.
왜 왔는지, 누구와 사는지, 부모는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도 여기서 살 건지. 몇 가지를 알고 나면 상대가 대충 어떤 사람인지 정리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러면 안심했다.
한 목사는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상대를 알아가는 방법이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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