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V
그해 겨울 박 선생도 차를 한 번 얼려 먹었다.
예배가 끝나고 거의 모든 사람이 돌아간 뒤였다. 박 선생의 오래된 회색 세단은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자기 차로 가던 한 목사는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
“플러그 안 꽂으셨어요?”
박 선생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무슨 플러그요?”
한 목사는 웃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자기에게도 누군가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 같았다.
차 앞쪽에서 전선을 찾아 꺼내 보여주었다.
“이거요. 밤에 꽂아두셔야 돼요.”
“이게 차에 원래 달려 있는 겁니까?”
“저도 여기 와서 알았어요.”
박 선생은 전선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날 차는 교회에 두고 갔고, 한 목사가 그를 집까지 태워주었다. 차 안에서 박 선생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가로등이 끊긴 뒤로는 수확이 끝난 들판이 길 양옆에 이어졌다. 눈 아래로 짧게 남은 줄기들이 검게 드러났고, 얼어붙은 면은 헤드라이트가 스칠 때만 잠깐 빛났다. 차가 지나가면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박 선생이 입을 열었다.
“아이들한테 얘기하시는 거 몇 번 들었습니다.
나는 내 자식 말은 그렇게 끝까지 잘 못 들어줬을 겁니다.”
말끝에 조금 웃었다.
박 선생은 자식이 어릴 때부터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미리 해두는 편이었다.
학비가 필요할 때 당황하지 않도록,
집을 구할 때 조금이라도 보탤 수 있도록.
하나를 마련해 두면 그다음을 준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준비가 끝나는 날을 상상하게 되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방에서 늦게 일어나고, 밥때를 놓쳐도 상관없고, 며칠쯤은
전화기를 꺼두어도 되는 날.
그런 생활을 오래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일주일이면 될지도 몰랐다. 그 일주일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다 문득 자기가 없는 동안 집에 필요한 것들이 생각났다.
“가끔은 그래도 되죠.”
한 목사가 말했다.
박 선생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불빛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목사님은 왜 여기까지 오셨어요?”
한 목사는 잠깐 생각했다.
“여기로 오게 돼서요.”
박 선생이 웃었다.
“그게 이유예요?”
“소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요?”
한 목사는 잠시 앞을 보았다.
“아마도 그렇죠.”
박 선생은 다시 창밖을 보았다.
“그런 게 있으면 좋겠네요.”
“뭐가요?”
“여기까지 와도 되는 이유 같은 거.”
한 목사는 대답하지 않았고
박 선생도 더 말하지 않았다.
전선들만 눈 위에서 서로의 곁을 지나
같은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 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