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 히터

Part IV

by제윤

한 목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나는 열네 살이었다.

한 목사는 자기 나이 열네 살 무렵을 잠깐 생각했다.

자신에게 떠나는 일은 늘 가고 싶은 쪽으로 가는 일이었다.

미국도 그랬고, 부모가 실망했던 신학교도 그랬다.

캘거리에 올 때에는 그것을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돌아보면 어디로 갈지는 늘 자기가 정했다.


유나는 다섯 살에 이곳으로 왔다.

이번이 처음일지도 몰랐다. 가는 쪽을 자기가 정해보고 싶은 것이.

그래서 앞으로 갈 곳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먼저 생각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이 진짜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가면 또 싫을 수도 있고.”


사촌들은 유나를 보고 캐나다 애 같다고 했다. 그런데 캘거리에서는 한국 애였다.

“그래서 둘 다 싫어요.”

유나는 잠깐 입꼬리를 움직였다.

“둘 다 되고 싶기도 하고.”


한 목사는 그제야 유나가 어디에 살고 싶은지를 고르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를 고르면 다른 하나가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둘 다 갖고 싶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하나쯤,

놓쳐도 괜찮을 만큼 원하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얼굴이었다.

한 목사는 아무 말 없이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는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목사님은 안 그래요?”

한 목사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볼 틈이 없었던 것 같아.”

“뭐가요?”

“옮길 때 뭘 두고 오는지. 근데 네가 왜 자꾸 그 얘기를 하는지는 알 것 같아.”

그 뒤로 둘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주차장을 반쯤 돌아 교회 쪽으로 오는 동안 한 목사는 굳이 침묵을 채우지 않았다.

건물이 가까워질 무렵 유나가 걸음을 늦췄다.


"저 나중에 여기 남으면 어떡하죠?”

한 목사도 걸음을 늦췄다.


“남고 싶지 않은데 남게 되면요.”

앞에서 하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말이었다.

한국에 가고 싶다는 것도, 캘거리가 싫다는 것도 아니었다.

싫은 데 오래 있다가 어느 날에는 싫은 줄도 모르게 되면 어떡하느냐는 말처럼 들렸다.


차 한 대가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둘 앞을 지나갔다. 헤드라이트가 눈 위를 훑고 사라진 뒤에도 한 목사는

한동안 대답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하면 되지.”


유나는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


“또 다 괜찮다는 말이잖아요.”

“아니.”

이번에는 한목사가 유나를 보았다.


“안 괜찮으면 그때 바꾸면 된다는 말이야.”


잠시 그대로 있던 유나는 운동화 끝으로 눈을 한 번 밀었다.

한 목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 말을 붙이면 방금 한 이야기가 다른 뜻이 될 것 같았다.


“추워요.”

“그러니까 장갑을 끼고 다니라니까.”

“차에 있어요.”

“그럼 가지러 가.”


이번에는 유나가 웃었다.

둘은 다시 교회 쪽으로 걸었다. 벽을 따라 밤새 남아 있을 차들의 전선이 차례로 꽂혀 있었고, 검은 선들은 눈 위에서 가까스로 보일 만큼 가늘었다.


유나는 엄마 차 쪽으로 뛰어갔다.

한 목사는 잠시 그 자리에 남았다.


주차장에는 방금 전까지 둘이 걸었던 자국이 이어져 있었다.


유나가 했던 말도 그 근처 어딘가에 아직 놓여 있는 것 같았다.


ⓒ 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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