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지금도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사람들은 먼저 울음소리를 기다린다. 응애, 하고 울음이 터지면 그제야 방 안의 사람들이 숨을 내쉰다. 시계를 보고 시간을 적고, 키와 몸무게를 잰다. 우리는 그 순간을 '시작'이라 부른다. 축하한다는 말이 오가고, 세상에 온 것을 기뻐한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 순간은 시작이면서 동시에 초에 처음 불이 붙은 순간이기도 하다고. 아직 걷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아기의 초도 첫 울음과 함께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 불은 내가 켠 것이 아니다. 누구도 자기 촛불을 스스로 켜지 않았다. 불을 켠 사람은 따로 있었고, 우리는 이미 켜진 채로 이 세상에 도착했다.
초가 녹는다는 말이 슬프게 들릴 수 있다. 축하의 자리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초는 타지 않으면 초가 아니다. 서랍 속에 새것으로 남아 있는 초는 줄어들지 않지만 누구의 얼굴도 밝혀 주지 못한다. 초가 녹는다는 것은 불이 켜져 있다는 뜻이고,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은 지금 누군가의 곁을 밝히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대부분 잊고 지낸다. 생일이 되면 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 불을 붙인다. 노래를 부르고, 소원을 빌고, 후 불어서 끈다. 박수가 터진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다. 한 해만큼 삶이 짧아졌음을 확인하는 날인데, 가장 크게 축하한다. 어쩌면 우리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줄어든 만큼 살아냈다는 것을.
초는 시계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똑딱거리지 않으니 녹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것 없이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간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아 초가 아직 넉넉하다고 믿는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거울 속 얼굴이나 오래된 사진 앞에서, 혹은 누군가의 부고 앞에서 알게 된다. 내 초도 이만큼 녹았구나.
우리는 지금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은 켜져 있다. 두 가지 모두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