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하루가 저문다. 창밖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오늘도 이렇게 갔네" 하고 말한다. 달력을 한 장 넘기면 한 달이 갔다고 하고, 새해가 오면 또 한 해가 갔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간다'고 말한다. 가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하루가 간 만큼 내 초도 줄어들었다.
숫자로 세어 본다. 팔십 년을 산다고 치면 하루로는 대략 이만 구천이백 일이다. 크게 느껴지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마흔아홉 해를 살았으니 그중 만 칠천구백 일쯤을 이미 지나왔다. 이렇게 곱해 보면 삶은 막연한 시간이 아니라 세어 볼 수 있는 날들이 된다.
통장의 잔액은 자주 들여다보면서 남은 날의 잔액은 좀처럼 세어 보지 않는다. 겁이 나서일 수도 있고, 세어 봐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서일 수도 있다. 선생님 말씀대로 어떤 초는 많이 남았는데도 꺼진다. 그래서 이 계산은 예측이 아니다. 하루가 얼마만 한 단위인지 감각을 얻어 보자는 것이다.
영화 에는 이 잔액이 눈에 보이는 세상이 나온다. 사람들은 스물다섯 살에 늙기를 멈추고, 그때부터 팔에 새겨진 초록빛 숫자가 남은 시간을 알려 준다. 숫자가 0이 되는 순간 삶도 끝난다.
남은 시간을 볼 수 있다면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영화 속 사람들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잔액이 적은 사람은 그 숫자에 쫓겨 하루 종일 뛰어다닌다. 눈금이 있다고 여유가 생기지는 않는다.
우리 초에는 눈금이 없다.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미루기도 한다.
줄어든다는 것은 쓰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어떻게 보냈든 하루는 똑같이 줄어든다. 웃으며 보낸 하루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흘려보낸 하루도, 견디기만 한 하루도 한 칸씩 줄어든다. 이 공평함이 두렵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러나 위안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도 하루만큼 살아낸 날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잘 보낸 하루만 살아낸 하루로 쳐 주는 것이 아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 초는 하루만큼 짧아질 것이다. 그 하루는 돌려받을 수 없다. 그러나 오늘 불이 켜져 있었다는 사실도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면 하루만큼 줄어들고, 하루만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