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는 매일 죽어간다. 매일 삶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이다."
—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24번
초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계셨다. 어느 날 선생님이 문득 이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얘들아,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촛불이 하나 켜진단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초가 녹기 시작해. 어떤 초는 오래 타고, 어떤 초는 빨리 타고, 어떤 초는 아직 많이 남았는데도 꺼져 버리기도 한단다."
그때의 나는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던 것, 이상하게 그 말만 오래 남았던 것을 기억한다.
시간이 흘러 나는 나이를 먹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 촛불 이야기가 자꾸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 꺼진 초도 있고, 바람 앞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초도 있고, 저마다 자기 촛불을 밝히며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매일을 산다.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잠이 든다. 그날그날의 죽음은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만큼 초가 짧아졌다는 사실은 잊은 채, 내일도 당연히 올 것이라 믿는다. 죽음은 아주 먼 곳의 일이고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먼 옛날의 철학자 세네카는 우리가 잊고 사는 그 사실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매일 죽어간다고. 뒤집어 보면 오늘 하루만큼 불을 밝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떤 날은 하루가 즐겁다. 별것 아닌 일에 웃고, 밥 한 끼가 맛있고, 이대로 오래 머물고 싶은 날이 있다. 또 어떤 날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밤이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하루를 겨우 버텨 낸 밤이다. 그런 밤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흔들리며, 다음 날 아침까지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작은 일이 아니다.
초의 길이는 내가 정할 수 없다.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오늘 이 불을 어디에 쓸지, 누구 곁에서 밝힐지는 매일 새로 정할 수 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은 거창하게 들리지만, 실은 이 하루하루의 선택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죽음과 삶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이야기했고, 나도 오래 생각해 왔다. 이 바카라은 정답을 말하는 바카라이 아니다. 내 촛불이 어떻게 흔들리고 어떻게 버텨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읽는 이의 촛불 곁에 잠시 놓여 서로의 빛을 확인하는 정도가 된다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