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이란 무엇인가
"프랑스는 일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불친절하지?"
20여 년 전, 프랑스의 한 슈퍼마켓에서 긴 계산줄 사이에 있던 나는 옆의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남편은 의아한 듯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느끼지?”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계산원도 그렇고 일하는 사람들이 전혀 웃지 않잖아.”
남편은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너에게 웃어줘야 할 만큼 돈을 받지 않았는데?”
순간 멍했다.
남편 말은 이러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손님에게 웃어 줄 이유도 의무도 없으며 더군다나 저들이 해야 할 일에 고객에게 웃어주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돈을 지불하는 소비자의 입장, 즉 손님은 왕이니 너희는 나에게 을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이 당시의 나로서는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은 슬롯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곳에서의 생활이 햇수가 쌓여갈수록 나의 생각도 바뀌어갔다.
프랑스 화장실은 어떠한가?
한국과 가장 극단적인 비교가 가능한 곳이 아닌가 한다.
내게 화장실이란 당연히 어딜 가나 널려있고 깨끗하고 공짜여야 했다.
그런데 그런 화장실에 가려면 프랑스에서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처음엔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당시에는 커다란 쇼핑몰에 딸린 화장실조차 동전을 내고 이용해야 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마담이 입구에서 돈을 받고 들여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요즘은 지하철 승차시스템처럼 동전을 넣으면 돌아가는 쇠막대 입구 방식으로 많이 바뀌었다. 파리의 기차역들 대부분이 이 방식을 쓴다.
그런 화장실은 그럭저럭 깨끗하고 화장지나 비누가 떨어지는 일은 없다.
간혹 화장을 하거나 쉴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곳도 있다.
(참고로 요즘은 파리의 대형 백화점이나 큰 쇼핑몰의 화장실은 돈을 내지 않는다.)
당시의 나는 한국의 수많은 깨끗한 화장실들을 떠올렸다. 어딜 가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팔을 걷어붙이고 박박 열심히 화장실 청소를 하던 아줌마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나는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당연했을까?
그제야 의아했다.
그분들은 가만히 놔두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워질 수밖에 없는 화장실을 청결하게 유지했다. 그분들이 열악한 노동환경과 박봉에 놓여 있다는 것조차 내 관심 밖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들이 박봉을 받는 것조차 무의식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이제는 한국에서 어디에나 있는 깨끗하고 편리한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송구스러운 맘이 먼저 든다.
한국과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을 갈 때마다 낯선 상황이 점점 많아졌다.
한때는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고갱님!’으로 시작하는 과도한 존대와 친절 백 퍼센트를 장착한 목소리까지 기이하게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물건에까지 존대를 쓰고 모든 동사에 존칭을 쓰는 것도 괴상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친절을 받을 때마다 몸 둘 바를 몰라했다.(물론 이러한 세태는 몇 년 지나지 않아 키오스크가 나오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낯선 먼 곳으로부터 툭 떨어진 돌멩이처럼 한국에서 나의 작은 무의식들이 수도 없이 튀어나와 나를 다시 외계인처럼 바라보았다.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런 나의 무의식들이 자꾸자꾸 깨어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슬롯일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과 그 노동을 하는 노동자를 바라보는 슬롯의 시선과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프랑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가 노동자임을 선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육체 노동자들과 공장 직원들, 마트의 계산대뿐만 아니라 공공병원에 속해 있는 의사, 대기업 중간 간부급들 또한 자신이 자본에 고용된 봉급생활자임을, 즉, 노동자임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인식하고 있다. 이것의 선명한 인식차이는 하늘과 땅차이만큼이나 슬롯의 모든 것을 바꾼다.
자신을 노동자로 인식하는 인구는 거의 7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들 이외에 소규모 상공인, 즉 빵집이나 작은 가게 주인들도 결은 다르지만 풀뿌리 경제 주체로서 노동자와 연대하는 계층이다.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은 자신의 동지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확실히 파악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가 빵을 사러 가거나, 약을 사러 가거나, 아침 장에 가서 채소를 사거나, 우체국에 가거나 어딜 가도 내게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노동자들은 내가 소비 주체로서 갑이라는 인식보다 같은 위치에 있는 다른 직종의 동료나 이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내 뒤에 줄을 서 있어도 서로 인사도 하고 수다도 떨고 뒷사람들은 군말 없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소비자를 위해 빨리빨리 일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줄 서서 그들의 느긋한 대화를 들으며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나뿐인가.)
그래서 프랑스는 손님들이 불만이 있을 때 직원에게 소리를 지른다거나 무례하게 하는 일은 비교적 찾아보기 힘들다. (있다면 온라인 게임이나 동료들 모두가 나서서 막아준다.) 고객이 불평을 하고 싶을 경우에 대화 앞머리에 “당신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이나 “당신 탓이 아니란 건 잘 알지만”을 꼭 붙인 다음 불만을 공손히 얘기한다.
프랑스의 기차나 메트로 노선은 자주 취소되거나 연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연착되는 시간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바카라을 읽거나하며 기차를 기다린다.
짜증 나는 표정 한 번 내지 않는다.
(다만 나 혼자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연착되거나 취소되는 이유들을 따져 어딘가에 화를 내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을 누를 길이 없는 것은 진정 나뿐인가?)
가끔 “당신 탓이 아닌 걸 알지만”을 연신 반복하며 공손하게 철도나 메트로 직원에게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철도 직원은 (당연히 자신의 탓이 아니므로)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고 여유 있게 불만을 들어주거나 너무 늦어질 땐 기차역의 손님들에게 물병을 나눠주는 역할을 한다.
식당은 어떠한가?
프랑스 사람들의 노동자로서의 동지의식 또는 이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식당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프랑스 문화 자체가 보챈다거나 다그치는 행위를 매우 예의 없는 행동으로 간주하는 데다 프랑스 식사 문화 자체가 매우 길고 느긋하다는 점을 미리 알아두어야 한다. 프랑스는 전식술, 전식, 본식, 치즈, 디저트, 커피나 식후주 순서로 되어 있다. 게다가 식사와 함께 와인이라도 고른다면 시간은 훨씬 더 걸릴 것이다.
보통 레스토랑에서 음식 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즐기기 위해 전식술을 마시며 느긋하게 앙뜨레를 기다린다. 따라서 주문을 하기 위해 박사학위라도 받는 듯 메뉴판을 심각한 표정으로 파고드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과정들이 경우에 따라서 매우 오래 걸리지만 즐거운 식사의 빠질 수 없는 과정이므로 서버는 손님들을 다그칠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나는 프랑스 생활 초기에 이 사람들은 매사에 세월아 네월아 밥 한 끼 먹기도 힘드네 한탄했었다.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면 언제 오나 목 빠지고 서빙하는 사람이 바쁜 게 보여도 그 사람만 계속 쳐다보고 그랬었다. 당연히 그들은 내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마도 맥도널드나 갈 것이지 여기는 왜 왔나 싶었을 것이다.
보통 프랑스 사람들은 나의 식사를 바카라임지는 서버들과 음식에 대한 칭찬과 다른 자잘한 이야기들을 유쾌하게 나누곤 한다. 굳이 소비자 대 노동자로 만난다는 생각보다 내 생활에서 나의 삶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로 서로를 인식한다.
여러분들이 프랑스 어딜 가든, 빵집, 슈퍼, 식당, 꽃집, 호텔등 어떤 소비행위를 하든 그 안에서 삶을 영위하고 부딪힌 인연이 있는 사람들과 여유 있게 삶의 동료로서 동지로서 대한다면 조급하고 서운한 마음을 훨씬 덜 수 있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우리의 합리적이고 실용적이고 매시간의 가성비를 생각하는 그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이 이들의 삶이다. 그리고 그것에 길들여지기 시작하면 천천히 가면서 비로소 바라보고 느끼게 되는 것들에 대해 여유 있고 다정한 웃음을 던지게 되는 시기가 온다.
삶 자체가 여유로워지니(늘어지니) 나의 마음가짐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된다. 항상 긴장되어 있고 뭔가 해야 할 것 같고 한시도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 같은 탄탄했던 마음가짐이 어느새 하릴없이 제 갈길을 가기 시작한다. 뭔가 단단히 쥐고 있던 것을, 내 것을 포함 남의 것까지 탁 놓아버리는 느낌으로 살아가게 된다. (물론 나의 경우다.)
이러한 이곳의 삶은 일과 분리된 삶, 즉 생계를 위한 일은 일이고 나의 삶은 또 다른 것인 이곳 사람들의 인생관과도 연관이 있다. 이것을 슬롯전체가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연대’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연대의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바로 파업이다.( 다음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