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정말 과외가 없을까?

있지만 없다.

by파리이방인

나는 프랑스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키웠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모들은 교육이란 것을 생각하고 때로는 집착한다. 아이가 어릴 땐 내 아이가 특별히 어떤 재주를 타고났을까 길을 찾으려 노심초사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한다. 물론 프랑스에서의 교육열이란 것은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얼마든지 교육열을 활활 불태울 수 있는 장작이 널리고 널린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굳이 내 아이 세대의 한국까지 상상하지 않더라도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게 한국과 프랑스의 비교가 나름의 내 수준에서 가능하다.


유치원도 없다. 당연히 영어 유치원 같은 건 없다.


학습지도 없다.


학원도 없다.


미술학원도 없다.


피아노학원도 없다.


발레학원도 없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없다.


서울 거리에서 눈만 돌리면 얼마든지 골라잡을 수 있는 교육의 시장이 프랑스 거리에는 없다. 한국식 과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를 꾸준히 보낼 수 있는 학원 시스템은 거의 전무했다. 그나마 대도시에 방과 후에 모자란 공부를 한두 시간 봐주는 도우미 형식의 간이 과외나 공부방 같은 형태가 산발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프랑스의 의무교육은 만 세 살부터 시작된다. 한마디로 유치원을 국가에서 의무교육으로 만든 셈이다. 그러니 아가들을 특별한 유치원에 넣을 시간도 필요도 없다. 이 유치원 과정이 끝나는 시점에 가서야 아이들은 그나마 각종 교육이 가능한 시기에 도달하게 된다.


둘째 딸아이는 손에 색연필을 쥐기 시작했을 때부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낙서 같았는데 끊임없이 종이 위에 끝도 알 수 없는 재미있는 세계를 풀어놓았다. 미술학원 같은 곳을 찾아 헤매었으나 당연히 없었다. 대신 각 지역마다 수업이 없는 수요일에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과외 활동이 활발하다. 미술교육, 승마, 체스 등등 아이부터 어른까지를 아우르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보통 학기 초에 지자체에서 등록을 받고(사립이 아님) 1년간 수업을 듣는다. 이때를 놓치면 중간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꼭 학기 초에 일괄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선생님과 함께 찰흙을 빚고 돌을 깨고 그림을 그렸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방학 때 각 그랑제꼴이나 유명한 아트스쿨에서 여는 방학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일주일 정도씩 서머스쿨을 다녔다. 그 짧은 기간을 둘째가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며 즐겼는지 모른다. 아마도 혼자 그리면서 답답하고 의문투성이였을 부분들이 있었을 테니 일분일초가 아이에겐 소중하고 경이로웠을 것이다. 둘째의 진로는 이미 어릴 때부터 정해져 있었지만 나는 길을 몰랐다. 산발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프로그램들을 찾아보며 마음만 졸였다. 유명한 아트스쿨에서 하는 과정은 너무 비싼 경우도 많았다. 이런 과정을 거친 아이들이 그랑제꼴에 합격할 확률이 더 높을까 맘을 졸여야 했다. 아이는 한 번도 데생을 집중적으로 수업받은 적이 없는 채로 그랑제꼴을 가기 위한 준비학교에 원서를 내고 시험을 봤다. 혹시 다른 아이들은 이미 기술적으로 너무나 훌륭한데 딸아이의 제멋대로 개발세발을 잘 봐줄까 혼자 걱정했다. 나는 미술 쪽으로 문외한이지만 아이를 키우며 맞닥뜨린 프랑스의 미술교육은 재단되지 않고 기술적인 면은 일부러 가르치지 않은 채 아이들의 창작력과 표현의 폭발을 유도하는 쪽으로 발달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자신이 가진 창작욕을 보였고 그것이 학교에서 보는 가장 핵심이다.


매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초에 각 지역구청에서 운동 관련해서도 일괄접수를 받는다. 수영, 축구, 태권도, 검도, 달리기 등등등. 이 시기에 지역마다 거미줄처럼 퍼져있는 음악원에서도 접수를 받는다. 각종 악기와 발레, 코러스와 댄스학교가 함께 있다. 접수하고 한 해가 갈수록 아이들의 교육 수준도 함께 올라간다. 물론 다음 학기에 접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음악원도 지역에 따라 규모와 수준에 차이가 있다. 한국인 음대생들이 유학을 오는 곳이 이런 음악원들이다. 따라서 한국은 음대를 가야만 배우는 과정들을 자연스럽게 어렸을 때부터 배우게 된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국가자격증을 이수한 교수들이다. 이러한 예체능이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감독이나 특정 교수의 눈에 들 필요도 없고 비싼 과외를 붙일 필요도 없고 존재하지도 않는다. 전국에 퍼져있는 이런 그물망 교육시스템 덕분에 예체능계 천재들은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발굴된다.

이런 과외활동들이 사교육이 아닌,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비용도 비싸지 않다. 어딜 가나 잘 짜인 프로그램 때문에 사교육이 들어설 자리도 별로 없다.


방학이 되면 학교와 방과 후 활동 또한 방학을 맞는데, 이 기간 동안 아이들은 각종 분야, 또는 원하는 놀이를 그룹을 지어 일주일, 이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 여행을 보내는 콜로니바캉스 시스템이 잘 짜여 있다.


스키 같은 경우는 겨울방학마다 스키학교가 열리는데 등급제가 잘 이루어져 있고 미술, 클래식, 언어, 스포츠, 과학 등 다양한 분야별로 짜여 있다. 이 과정 동안 아이들은 맘껏 방학을 즐기면서 같은 취미나 흥미를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아이들은 스키를 2년 정도하고 그만두었다. 검도도 1년 하고 그만두고 태권도도 2년 하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셋째는 기타를 계속하고 있고 둘째도 첼로를 9년 동안 배웠다. 여기서 더 계속하면 음악 쪽으로 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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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입시미술이 없다. 입시 음악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각자 어렸을 때부터 원하던 분야를 놀이처럼 하다가 어느 순간, 즉 입시의 순간에 심도 있게 꾸준히 평생 해왔던 아이들끼리 같은 분야에서 함께 모여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된다.


이곳의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아이들은 열심히 과외시켜서 잘한다기보다는 타고난 공붓벌레들이거나 타고난 재능과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의 꾸준함의 결실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이나 중국 부모들의 학교 성적을 염두에 둔 국영수 같은 느낌의 과외 열풍은 이곳에서도 식지 않았다. 어차피 학교수업 시험 결과에 연연하는 경쟁이 치열하지 않기도 하고 결과는 어렵지 않게 잘 나온다. 이곳의 성적은 1등부터 꼴등까지 숫자로 나오는 게 아니고 각 과목의 목표치를 얼마큼 성취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아이가 얼마큼 목표에 도달했는지만 보인다.


물론 사립학교는 반에서 최고 점수, 최저 점수, 반 평균 정도는 보여주기 때문에 대충 가늠할 수 있지만 선생님과의 면담에서는 대체로 잘했다는 칭찬을 듣는다. 어차피 대입이란 게 줄 세워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곳의 대입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만 받으면 대학 입학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2018년도 대입요강이 바뀌면서 내신과 자소서가 들어갔다. 따라서 아무나 들어가던 기준이 조금 상향조정되었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정말 과외다운 과외는 언제 할까?


모두가 하는 게 아니다.


프랑스는 그랑제꼴로 일컬어지는 고등 공립학교, 고등 사립학교가 정치, 경제, 엔지니어, 예술, 군사, 행정에 걸쳐 존재한다. 그랑제꼴에 가고 싶은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특수분야의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프레파, 즉 준비학교를 들어가서 치열하게 경쟁한 후, 바늘구멍 같은 입시를 뚫고 학교에 들어간다.


그랑제꼴은 분야에 따라 공립과 사립이 어느 곳이 좋은지 갈리는데 일단 공립은 학비가 싸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물론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아이가 원하는 분야가 아니면 안 간다. 어느 슬롯나 그렇듯이 직업의 세습이 이루어지는 느낌이 분명히 있고 부모의 능력에 따라 더 고학력으로 더 좋은 온라인 게임에 취업하는 현상은 여기도 다르지 않지만 그 양상이 덜 폭력적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그리 목매는 의사나 변호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

프랑스의 의대나 법대는 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학년을 올라가기가 극도로 어렵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도 평생 단 두 번으로 제한되며 정원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살인적인 경쟁이 벌어진다. 더군다나 학년 유급을 두 번 하면 프랑스의 어떠한 의대도 가지 못한다. 이러한 제도는 의대뿐만 아니라 위쪽 음대나 미대에서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이처럼 알짜배기 학업 과정을 버텨내기 위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과외가 생겨난다. 그런데 이런 과외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이 아닌 만큼 특수하고 비싸다.


둘째가 입시를 앞둘 무렵, 프레파와 미술 쪽 그랑제꼴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사립 아트스쿨과 정부에서 공식 인정한 고등아트스쿨로 등록된 학교들을 그랑제꼴이라고 보면 된다. 공립 같은 경우는 바늘구멍 같은 합격률만큼이나 일단 합격하고 나면 국가에서 전폭 지원해 준다. 국립은 한꺼번에 원서를 내고 서로 겹치지 않게 시험을 3차까지 보며 결과도 정부 시스템을 통해서 일원적으로 발표한다. 보통 이런 그랑제꼴에 가기 위해 거치는 곳이 위에서 말했던 프레파, 즉 준비반이다. 이곳도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는데 미술 쪽은 좋은 준비반은 사립이 꽉 잡고 있다. 그리고 좋은 준비학교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들도 합격률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뽑지 않는다. 이때 돈이 많이 든다. 일 년 만에 합격하는 비율은 미미하고 보통 재수, 삼수를 거친다. 미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준비반 클래스는 보통 일 년 학비가 만 유로를 넘는다. 이때 좋은 프레파를 가기 위해 과외가 존재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프랑스에서는 보통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한국처럼 국영수 과외가 별로 없다. 한두 시간 도우미 형식은 많지만 학원 형식은 없다. 대학도 과외 한 번 안 하고 진학한다. 다만 그랑제꼴이나 입시가 치열한 특수학교들을 위한 사립과 공립 프레파가 존재하며 그 과정에서 과외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기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한다. 프랑스에서 프레파에 진학하는 고등학생의 비율은 10퍼센트가 안 된다.


물론 이후의 교육과정이 사립이냐 공립이냐에 따라 학비가 현저하게 차이가 나며 비싼 학비가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결과와 무관하기 때문에 비용을 쓴 만큼의 결과를 바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마음이 프랑스에서는 전혀 당연하지 않다. 그저 돈으로 때울 수 있는 부모들은 돈으로 최대한 때워보려 하지만 결과는 그리 녹녹지 않다.(물론 초호화 슈퍼리치의 경우가 아닌 99퍼센트 보통사람들 이야기다.)


나는 이런 이상한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끊임없이 불안했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아이들을 과외선생님께 맡기고 마음의 평안을 얼마나 얻고 싶었는지 모른다. 내가 외국인이라 나만 모르는 과외를 다들 시키고 있는 것 아닌가 피해의식까지 들었던 적이 있다. 물론 여기저기 알아보고 방학 동안 선행학습하는 캠핑도 보내봤다. 알아보니 프랑스 부모들은 보통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보냈다. 처음엔 조금 효과가 있나 싶더니 아이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 때문에 수업시간에 더 게을러진 것 같았다. 결국 돈만 쓴 꼴이었다. 이런 나를 보고 우리 아이들은 '역시 한국엄마'라고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이후에 어찌어찌 없는 돈 쪼개어 과외라도 시키려고 하면 아이들은 이 말을 내세워 강렬하게 저항했다.


"엄마! 창문으로 돈다발을 던져 버리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과외비란 그들에게 창문으로 던져버리는 돈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외를 좀 더 열심히 시킬걸 하는 약간의 후회가 드는 나는 역시 한국 엄마인가?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