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있다면 그들의 운명은?
프랑스는 모두가 1등이 되고 싶어 하는 슬롯가 아니다. 1등만 알아주는 슬롯도 아니고, 줄 세우기도 없으며 인생 전반에 걸쳐 경쟁이 치열하지도 않다.
교육의 기본목적은 공화국의 가치관을 배우고 연대의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데 있다. 초등학교 때 이미 유엔아동권리협약인 어린이의 권리를 배운다. 나의 권리와 부당함이란 어떤 것인지 먼저 배우는 시스템이다. 중학교 즈음엔 남학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이 피임교육을 반복해서 받는다. 남학생도 여성의 몸에 대해 자세하게 배우며 임신의 의미와 함께 피임 교육을 가족의 가치보다 훨씬 실질적으로 배운다.
중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숙제를 하다가 왜 남자들이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여성의 몸과 생리주기, 임신에 대해서 알아야 하냐고 투덜거려서 속으로 충격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피임교육은커녕 여성의 몸에 대해 수박 겉핥기처럼 대충 시간 때웠던 수업내용과 그마저도 그 시간에 남학생들은 밖에 나가서 놀라고 했던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의 글은 아이 셋을 키우며 얻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학교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도 있지만, 공립이든 사립이든 최소한의 가치만큼은 프랑스 교육부가 잡아준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따라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첫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하루는 친구를 집으로 데리고 왔는데 배가 고프다며 친구에게 저녁까지 엄마가 챙겨줘야 한다고 통보하듯 말했다. 뭔가 평상시와 다른 말투와 심상치 않게 당당한 아들의 모습에 살짝 어리둥절했다. 호기심에 아들에게 일부러 짓궂은 질문을 던져보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미리 말도 안 하고, 너무 예의 없는 것 아니니?”
그러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이들은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있고, 어디서나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지?”
나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차분함을 잃고 물었다.
“오늘 학교에서 배웠어. 유엔 어린이 헌장, 어린이의 권리!”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프랑스 학교에서는 어릴 때부터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4대 기본권을 아주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었다. 아동을 단순한 보호의 대상이 아닌, 독자적인 인격체이자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교육이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선생님의 지시에 일괄적으로 움직이지 않아도 선생님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괜히 안달이 난 엄마가 아이에게 주의를 주려고 하면 선생님이 괜찮다고 막는다. 프랑스에 살면서 제일 많이 듣게 되는 말, "각자 원하는 대로", "그의 리듬에 맞춰"등등이다. 아이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딴짓을 독자적으로 하다가 결국 '각자의 리듬에 따라' 선생님의 지시대로 하게 되는 그런 것 들이다.
학교 교육내용에서 받게 되는 충격은 참신했다. 언젠가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챙기다가 학교에서 나눠준 교육 자료를 보게 되었다. 다름 아닌 파업과 쟁의에 대한 내용이었다. 순간, 이런 내용을 초등학생들에게 가르친다고? 의문과 함께 강렬한 호기심이 일었다.
자료에는 파업이나 쟁의를 함으로써 슬롯적 관심을 이끌고, 언론은 이에 대해 원인과 문제점등을 취재하고 보도하며, 대중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났는지, 슬롯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정부는 그것을 받아들여 정바카라이나 해결바카라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일련의 과정이 그림과 함께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물론 파업은 우리들의 권리라는 내용과 함께였다.
나는 프랑스가 어렸을 때부터 '의무'나 '순종'보다 '권리'부터 가르치는 교육 방식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이제껏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외 없이 당당해 보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이해가 안 갔었는데 모든 것이 어렴풋이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달까.
'아! 이래서 여기 사람들 매사에 그토록 당당한 거였구나!'
사실, 당당하게 요구하고 진지하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슬롯는 늘 시끄럽고 소란스럽지만, 결국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적어도 요란한 해결바카라을 찾으려 무단히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슬롯이다. 권리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슬롯 전체에 대한 연대와 평등을 교육함으로써 슬롯의 최저선을 단단하게 지켜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첫 1년은 '준비반(CP)'이라는 이름으로 오직 불어, 즉 국어만 배운다. 쓰기, 읽기, 시, 말하기 등 세분화된 국어 교육의 촘촘함에 또 한 번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불어는 문법이 너무 어려워서 이후의 교과과정을 따라가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루로 무조건 첫 해에는 알파벳부터 시작하여 아무도 낙오하지 않도록 철저히 국어만 가르치는 앞으로의 학습의 '준비반'인 것이다. 우리는 한글이 쉬우니까 잘 몰랐는데 불어는 문법부터 쓰기까지 난해하기 짝이 없다. 이런 언어가 죽지 않고 이제껏 연명하고 있다니 놀라울 지경이었는데 이들의 국어교육의 집착에 가까운 세밀한 교육을 보면 경외감이 든다.
이후, 초등학교 전체 교육의 반이 국어에 할애된다고 할 만큼 교육양이 방대하다.
이러니 영어니 수학이니 하는 과목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상대적으로 비좁다.
이들에게 절대로 포기하지 못하는 교육은 영어도 수학도 아닌 불어, 즉 국어교육이다.
그렇다면 정말 이곳에는 선행학습이 없을까?
프랑스 초등학교에서 학년 초에 월반하는 아이들이 간혹 꽤 있다. 당연히 똑똑한 아이들이 월반하는 거겠지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이곳의 월반이란 이미 선행학습이 잘 된 아이들이 같은 반 아이들의 학습권이나 수업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이미 수업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되는 학생을 윗학년으로 올리는 행위다. 한마디로 "너는 이미 다 아는 것 같으니 다른 애들 수업분위기 망치지 말고 아예 윗반으로 올라가서 배우거라. 물론 네가 일 년을 훌쩍 뛰어넘어도 정말 괜찮을지에 대한 세세한 평가 따위를 학교가 해주진 않지만 일단 올라갔다가 힘들면 유급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이런 뜻이다. 그래서 한국 부모들은 월반을 대단한 영광으로 여기는 반면, 프랑스 부모들은 오히려 아이가 또래와 어울리기를 바라며 월반을 달가워하지 않고 남겨달라고 학교에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다음 학년으로 못 올라가는 유급에 대한 인식도 한국과 현저한 차이가 존재한다.
당연히 우리로선 학생으로서 있어서도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유급인데 프랑스 학부모들은 아이가 진도를 잘 못 따라가는 것 같으면 일부러 유급을 신청하기도 한다. 1년 더디게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확실히 기본을 다지고 가야 앞으로의 인생에 더 의미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이렇게 유급한 학생들이 다음 해에 줄곧 반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이후 계속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월반도 유급도 하지 않고 물결 흐르듯 학년을 올라간다. 교과 내용이 그리 많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방학도 많으니 말이다.
첫째가 중학교를 시작할 즈음, 한국 엄마 특유의 불안함이 도졌다. 영어 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 프랑스의 현실을 참을 수 없어 이리저리 수소문하며 영어 과외를 찾아 헤맸다. 파리의 지인들은 영국대사관에서 하는 프로그램에 돈과 시간을 써서 다니게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나도 마냥 이곳 사람들처럼 한가하게 눌러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주변은 고요하고 괜한 조바심으로 나 혼자 출렁댔다. 그렇게 수소문해 본 결과, 다행히 차로 15분 거리에 영국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서 영어 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원이 12명이라기에 "그래도 초기라 자리가 있나 보다. 빨리 와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기도 잠깐, 주최 측에서는 아직 12명이 모이지 않아 수업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전해왔고 결국 그 수업은 폐강되고 말았다. 12명을 채우는데 실패한 것이다. 정말 기가 차고 코가 찰 노릇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다. 아니 중학교 가는 애들한테조차 왜 영어를 이리 소홀히 하는지 나라전체가 무식해 보였다.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랬다.
그때 깨달았다. 프랑스에 사는 동안 영어를 못 해서 불편함을 느낀 적도 없거니와, 영어를 잘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개념이나 집착이 슬롯 전반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애초에 교육의 목표에 '영어 선행학습'이나 '스펙용 수학'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정말 프랑스에는 과외가 존재하지 않을까?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