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못하는 겁니다.

by파리이방인

결론부터 얘기하면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못 하는 거다.

못해서 안 하는 거다.

우리가 외모만 보고 당연히 영어를 잘할 거라는 착각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들은 영어를 체질적으로 못한다. 특히 영어발음은 최악인데 프랑스 언어의 억양과 발음구조가 다른 것을 어쩌겠는가? 한국사람이 영어로 말할 때 특유의 한국어 엑센트가 묻어나듯 프랑스 사람들도 특유의 프랑스 억양과 발음에 영어가 묻힌다.

그러나 영어를 바라보는 우리와 그들의 커다란 차이점은 각자 슬롯 안에서의 영어의 위상에서 발생한다.

한마디로 하늘과 땅차이다.


한국의 영어위상은 어떨까?

모두가 아시다시피 영어의 한국에서의 위상은 어찌 보면 모국어인 한국어보다 더 높은 듯하다. 그렇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경험들을 살면서 몸소 체험하게 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에게 영어란 조선시대의 한문처럼 새로운 문물과 지식을 받아들일 필수불가결한 도구이자 천지가 개벽하고 인생을 역전시키고 싶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필수 요소였다. 현대에는 의학, 경제와 인문에서도 영어를 안다는 것은 그 개념을 안다는 것이고 그 이해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다. 따라서 가방끈이 길어질수록 한국에서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혹여 가방끈에 관계없이 외국물을 먹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척하는 것은 어쨌든 한국슬롯의 계층에서 아는 척, 있는 척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되곤 한다.

프랑스는 어떨까?

당신이 프랑스 파리의 길거리에서 길을 걷고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리고 어떤 프랑스 사람이 유창한 영어로 당신에게 말을 건다면 이때 이 상황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사기꾼이거나 거지 거나.

사실 프랑스어는 한국의 영어처럼 유럽이나 북미의 상위층이 쓰는 언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럽의 왕실은 오래도록 불어를 썼다. 평민들은 몰라도 왕족이나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알아야 했다. 그것이 상류층을 나타내는 척도였다. 그들이 그나마 영어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시대는 사실 최근에 들어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유럽의 젊은 세대는 미드와 할리우드 영화, 게임 등을 통해 영어를 습득한다. 그들에겐 이미 생활이 되었다. 프랑스 교육에서 영어의 위상이란 반드시 영어를 잘해야 하는 분야에서만 필수이다. 예를 들면 경영, 비즈니스, 예술쪽등이다. 이런 쪽으로 공부를 한다면 영어는 반드시 잘해야 한다. 그 이외의 사람들, 의사, 약사, 변호사 하다못해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도 대단히 유창한 영어를 요구하지 않는다. (여러분은 간혹 티브이에서 프랑스 대통령의 프랑스 억양 물씬 풍기는 단순한 영어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프랑스의 기성세대(아마도 젊은 세대도)는 영어발음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너무 유창하게 네이티브처럼 솰라솰라 얘기한다면 십중팔구 프랑스 사람들은 당신을 무시하거나 짜증을 낼 것이다. 그들이 당신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들이 못 알아들어서이고 짜증을 내는 것도 자신들이 못 알아들어서다.

물론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는 프랑스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반대로 내가 못 알아들을 만큼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들거나 친절해지는 일 따위는 더더구나 없다. 영어는 외국어 중의 하나이고 그 외국어를 잘해야 할 의무는 당연히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외국어가 한 개인의 어떤 면이든 평가하는 도구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프랑스에서는 영어는 영어다.

중국어는 중국어고 일어는 일어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프랑스의 쇠퇴와 영어를 쓰는 나라들의 막강한 파워 때문인지 그런 여유로움 또는 게으름이 한 풀 꺾였다. 예를 들면, 교육과정에서 영어를 좀 더 적극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물론 중학교부터 시작이지만 몇 년 전부터 초등학교부터 영어 교육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의 수준에서는 보자면 세 살 아이 수준 같은 것일 테지만 말이다.

프랑스에는 입시를 위해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기저기 분포되어 있는 영어학원이 없다. 그 비슷한 것도 없다. (온라인 게임인 영어학원은 있다.) 물론 돈 많이 들여서 외국 보내는 여름캠프 같은 것 빼놓고 말이다.

나도 내 아이를 영어학원 같은 곳에 보내려고 수년간 노력했으나 헛수고였고 그럼에도 아이들도 언제 그렇데 되었는지 모르게 영어를 쉽게 습득했다. 물론 듣기 힘든 엑센트는 덤이지만.


이제 다시 프랑스의 길거리로 와보자.

외국사람이 어설픈 영어로 길을 물어본다.

프랑스사람들은 기꺼이 어설픈 불어로 손짓발짓까지 해가며 길을 잘 가르쳐줄 것이다.

또 다른 외국사람이 유창한 영어로 길을 물어본다.

프랑스 사람들은 매몰차게 자기 갈길 갈 것이다. 왜냐하면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조금 알아듣는 옆에 있는 또 다른 프랑스인이 손짓발짓 하며 도와주려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콩글리쉬가 있듯이 프랑스엔 프랑글리쉬가 있다.

문법도 맞지 않는,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 쓰는 프랑스식 영어를 일컫는다.

불어와 영어는 같은 라틴계열이라 꽤 많은 부분이 비슷하다. 그래서 그런지 프랑스 사람들은 대충 그걸로 평생을 때운다. 개인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다. 웬만한 회사 홈페이지, 기차역의 영어방송등, 공적이라 할 수 있는 공간에서의 영어도 프랑글리쉬가 많다.

예를 들어,

More I read, More I like it(읽을수록 좋아진다)

불어의 비교급 구문 Plus je lis, plus j'aim을 그대로 영어 단어로만 바꿔 끼운 형태다.

영어에서는 우리가 중학교 때 그렇게 외웠던 "The more I read, the more I like it"이라고 해야 맞는다.

불어에서 파티나 축제를 '하다'를 동사 faire(하다)로 쓰기 때문에, 영어로도 have a party 대신 make a party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파티는 가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하는 것이다.

Take a decision(결정을 내리다)도 영어로는 make a decision이다. 하지만 자기들이 쓰는 식으로 동사를 그대로 직역해서 쓴다. 솔직히 여기서 살면서 계속 듣다 보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게 될 뿐만 아니라 처음엔 이상하게 들리다가 나중엔 영어가 이상하게 들리는 신비한 경지에 이르고 결국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불쌍한 나 같은 사람은 프랑글리쉬에 귀속되게 된다.

초기엔 나도 적극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반문했었다.

“너희, 저거 틀렸어. 영어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

“아니, 영어는 그렇지 않다고오!”

“아니,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말한다고오!”

이 말도 자꾸 들으면 내가 결국 이상한 것 같다는 세뇌에 이르게 된다.


결국 여러분들은 프랑스에서 마음껏 콩글리쉬를 쓰시면 된다. 그들은 매우 친근하고 친절하게 대해 줄 것이다. 자신감만 있으면 된다. 얼마든지 영어를 한국식으로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잘 통하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은 생각할 여지도 없이 영어를 잘 못하는 나라, 그러나 영어를 자기식대로 잘하는 나라,

바로 프랑스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