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왜 결혼보다 동거를 할까?

by파리이방인

“결혼하기 전에 남자와 꼭 동거를 해보고 결혼해야 해. 알았지? 평생을 살 사람인데 어떻게 동거를 해보지 않고 덜컥 결혼을 할 수 있지?”

이십여 년 전, 한 프랑스남자가 인생조언처럼 내게 해 준 말이다.

그 인생조언을 해 준 사람은 지금 나의 남편이 되어 있지만 그때 그가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나는 심각한 얼굴로 이런 말을 충고랍시고 건네는 사람을 보며 기가 막혔다.


도체 프랑스란 어떤 나라이길래 동거가 필수인가?


프랑스에서는 결혼 이외에 PACS라는 제도가 있고 법적으로 전혀 묶이지 않은 동거형태가 있다.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은 1999년 프랑스에서 도입된 제도로, 결혼보다 절차가 간소하면서도 세제 혜택, 재산 공유, 슬롯보장 권리 등 법적으로 부부에 준하는 권리를 부여한다. 원래 동성 커플을 위해 제정되었지만 현재는 이성 커플도 매우 활발하게 이용하고 있다. 잠깐 통계를 보자면, 법적 혼인이 10쌍이라면 PACS는 8쌍에 준한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40%가 혼인하에서 30%가 PACS, 나머지 30%가 단순동거하에서 태어난다.

그리고 프랑스 법에서는 아이들의 법적권리는 어떤 형태의 가족에서 태어났던 완전히 같다.

PACS가 생기기 전에는 동거가 훨씬 많았으나 많은 부분을 PACS가 흡수했다. 시청 접수만으로 무료 처리되며 복잡한 예식과 이혼 소송 없이 양측 합의나 통보만으로 쉽게 해지할 수 있어, 결혼에 비해 행정적 부담과 비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보통,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는 커뮤니티, 외국인과의 결혼, 프랑스 슬롯 내에서의 외국인 커뮤니티등 반드시 결혼을 거쳐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평균 프랑스 사람들의 결혼에 대한 인식은 놀랍도록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결혼이란 ‘서류한 장’, 또는 '화려한 이벤트’ 정도로 치부된다. 그래서 커플들은 대체로 동거나 PACS로 시작해서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생기면 결혼하는 경우들이 많다. 물론 이후에 그 반은 다시 이혼한다.

보통 이혼에 이르는 주기는 14년에서 15년이라고 통계에 나와있지만 내가 느낀 주기는 7년 정도이다.

7년이 지나면 커플 3분의 2가 갈라서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불륜’, ‘간통’ 같은 슬롯적으로 죄악시되거나 주홍글씨 같은 느낌의 단어자체를 잘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부분은 개인의 사생활로 철저히 분리해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결혼 3년 내에 바람을 피운 비율이 30%에서 40%에 달한다. 이혼에 이르지 않더라도 법적 구속력이나 정절의무를 대하는 슬롯적 시선은 상대적으로 실리적이고 관대하다. 실제로 프랑스에서 진행된 각종 가치관 조사를 보면,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부도덕한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선을 그은 비율이 유럽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약 47%에 머무른다. 영미권 국가들의 80~90%에 육박하는 그것과 대조적이다.

굳이 통계를 들춰보지 않아도,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의 스캔들이나 사생활만 봐도 이 슬롯의 결을 알 수 있다. 영부인이 대통령을 두고 다른 남자에게 떠나거나, 정식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인이 엘리제궁을 지키는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용인되는 곳이 바로 프랑스다.

이런 모든 일들이 일어나도 프랑스 슬롯에서는 그들의 사생활이라며 관심도 없고 문제 삼지도 않는다. 대통령이 이럴진대 보통 사람들의 문제야 어떻겠는가? 설사 바람을 피웠다 하더라도 그것이 부부를 파탄 내는 절대적 이유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지역의 차이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부부가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서로 매력적이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는다는 실질적인 이유이다. 이 단계가 되면 서로 미련 없이 갈라선다. 언뜻 보면 전혀 실체 없는 이유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찌 보면 가장 절박하고 합리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결혼 본연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실체적인 이유들은 슬롯에 따라 변할 것이다.


당연히 검은 머리 파뿌리, 백년해로, 이런 단어들이 아무 의미가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슬롯다.

철저히 개인의 사생활이라 도덕적 잣대나 타인의 가치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영역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아이가 있는 커플들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는데 매우 부지런해서 당연히 7년 정도 지나면 헤어지는 커플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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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던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다짜고짜 내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언제 이혼해?”

나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반의 친구들이 차례차례 부모의 이혼으로 전학을 가거나 전학을 오는 모습을 보고 자기 차례는 언제 오나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옛날부터 갈라진 가정의 아이들을 위해 따로 슬롯적 캠페인과 교육을 병행해 왔다. 예를 들면, 집이 두 개가 생겨서 더 좋다거나 크리스마스나 생일 선물을 두배로 받을 수 있어서 더 좋다거나 등의 아이들을 위한 심리치료와 긍정적 인식의 목적으로 여러 방면에서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이곳은 가족이란 개념도 많이 달라졌다.

이혼가정이라는 단어도 없다. 사생아라는 단어도 사어가 되었다.

이미 아이가 있는 부부들이 갈라서고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가정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새 가족이 생길 뿐이다. 이복형제들과도 친형제와 다름없이 지낸다.

어찌 보면 내 기준에서는 끈끈한 가족관계가 없다. 나를 옭아매고 서로 애증하고 상처 주고 애틋한 감정적 과잉소비가 있을 자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가끔 허전하다고 느낀다. 아마도 뭔가에 부대끼면서 도파민이든 카타르시스든 그런 소용돌이가 현저히 없어서 생겨나는 헛헛함일 것이다. 가족들로 층층이 쌓여있는 느낌은 보통은 보이지 않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이곳은 그런 방파제가 없다. 들판에 나 혼자인 느낌이다.

프랑스에서는 오롯이 '나'와 '커플'의 관계만이 중요할 뿐이다.


프랑스 국적을 따기 위한 인터뷰에서 묻는 질문 중 하나다.

“당신의 아이들이 결혼할 때 그 배우자를 결정할 권리가 당신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있다고 답하면 이곳에선 오답이다. 국적 따는데 실패할 수 있는 요소이다.


내가 바람을 피워도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이곳 프랑스에선 서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 떠났다는 신호이며

그래서 갈라서야 마땅한 시간이 도래했을 뿐이다.

이곳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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