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순 넘쳐나는 8월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더위에 지친 하루 끝, 갓 지은 밥 위에 얹어 먹는 고구마순 한 젓가락의 아삭한 식감이 입안 가득 퍼진다. 길고 고단했던 하루에 제철음식이 건네는 위로다.
고구마순엔 여름이 다 들어 있다. 장마철 거센 빗줄기, 숨 막히는 폭염, 바싹 타들어가던 가뭄까지. 이 모두를 품고 거침없이 뻗어가는 고구마순을 먹어야 여름이다.
소싯적, 고구마순은 고구마를 위해서만 있는 줄 알았다. 고구마순을 너무나 좋아하는 남자를 만나 그 맛을 알게 되었고, 여름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채소가 되었다. 심지어 고구마가 뿌리채소가 아니라 줄기와 잎을 먹는 채소로 분류할 정도로 고구마순에 빠졌다.
텃밭을 가꾸기 전, 시장에서 사 온 고구마 줄기는 소금물에 담갔다 까도 비들 비들 시들어 껍질 벗기는데 애를 먹었다. 삶아서 볶아낸 나물 한 접시는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특별히 이렇다 할 정도로 맛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그 맛을 그리워하는 입맛을 위해 시장에 가면 고구마순이 눈에 들어왔다. 무대신 하지감자를 도톰하게 썰어 넣고, 삶은 고구마순을 듬뿍 얹어, 그 위에 갈치를 올리고 청양고추와 갖은 양념장을 뿌려 지져낸 갈치고구마순조림을 특히 좋아했다. 칼칼하고 맛있었던 어머니 손맛이라고 갈치조림 하나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곤 했다.
이젠 텃밭이 생겼고 손바닥만 한 터에 고구마가 텃밭 작물 가장 우선순위에 올라있다. 지난해는 고구마순을 심으며 고구마보다 순이 목적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는지 정말 고구마 순만 무성했다. 가을에 고구마순을 걷어내고 캐면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밭에서 식물에게조차도 함부로 입을 놀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어설펐던 고구마순 나물 솜씨는 이제 맛보지 않고도 간을 딱 맞추는 장금이가 되었고, 갈치고구마순조림은 온 식구가 다 좋아하는 여름 반찬으로 자리 잡았다. 껍질을 벗긴 고구마순은 살짝 데치면 너무나 예쁜 연두색이 나온다. 요 색감을 보려고도 자주 고구마순 나물을 하게 되어 이젠 내가 더 좋아하는 나물이 되었다.
지독한 더위에도 고구마순이 텃밭 두 고랑을 덮었다. 매미소리 들으며 열심히 까서 색다른 김치를 담는다. 갓 따낸 고구마순은 소금물에 담그지 않아도 끝을 살짝 꺾어내리면 훌훌 잘 벗겨진다. 또르르 말려 내려가는 투명한 초록빛 껍질 너머로 아침 이슬처럼 맑은 연두색 속살이 드러난다.
옆에서 돕는 남편의 두툼한 손이 나보다 더 잘 깐다.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반찬이 널렸는데 손끝이 까매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손을 보태는 건 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은 시간이어서가 아닐까.
껍질을 깐 고구마순을 살짝 절여, 파 대신 부추를 듬뿍 넣고, 빨간 풋고추를 갈아 넣어, 마늘, 생강, 액젓에 찹쌀풀과 버무리면 고구마순김치가 된다. 마지막에 통참깨를 솔솔 뿌린다. 여름에만 잠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속달동 맛집을 차려야 한다는 짝꿍의 아낌없는 칭찬에 나의 솜씨는 점점 수준급이 되어간다.
'내가 좋아하면 꽃이고, 내가 싫어하면 잡초다'라는 말처럼 고구마순은 나에게 여름을 이기는 건강식이다. 덕분에 나의 여름은 풍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