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한결 서늘해졌다.
하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난 아침은 맑고 영롱한 이슬방울이 풀잎마다 살포시 앉아있다. 거미줄에도 대롱대롱 매달려 수정처럼 빛난다.
매미소리에 묻혔던 개울물 소리가 다시 맑게 졸졸거리고, 앞 논 벼 이삭에는 제법 노란 볕이 내려앉았다. 온 들녘을 달구던 여름의 열기는 어느덧 고요한 가을의 풍요로 채워지고 있다. 내 마당 한쪽에도 한 계절이 곱게 익어간다.
언제나 그랬듯, 누렇게 익은 맷돌호박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무성했던 잎과 덩굴 사이로 초록의 시간을 다 보내고, 제 몸 안에 가을을 가득 품은 늙은 호박이다. 뜨거운 햇살도 견디고 소나기도 수차례 받아내며 말없이 제 속을 채워온 시간이 주황빛에 고스란히 담겼다. 해 질 녘 노을빛 같다.
호박 꼭지를 살펴보았다. 거칠어진 굳은살처럼 단단해졌다. 뽀얗게 분이 오르고 올록볼록 접힌 골은 한 세월 살아낸 깊은 주름 같다. 두 손으로 맷돌호박을 들어 올렸다. 묵직했다. 봄의 햇살과 여름의 장맛비, 뜨거운 볕과 긴 기다림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무게다.
씨앗 하나가 흙에 묻혀 싹을 틔우고, 작은 덩굴이 울타리에 기어올라 꽃을 피우더니, 마침내 이렇게 묵직한 열매를 내어주었다. 농사라는 것이 그렇다. 심고 기다렸을 뿐인데, 자연은 계절마다 제 몫의 수고를 다해 우리 앞에 결실을 내놓는다.
둥실둥실한 보름달을 따내듯 가을을 한 덩이씩 품에 안았다, 호박보다 더 커다란 기쁨이 차오르며 뿌듯했다. 참 잘도 컸다. 애썼다. 호박에게 건네는 한마디에 마당의 감나무도 고개를 끄덕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장단을 맞춘다.
이제 이 호박으로 무엇을 해 먹을까. 달큰한 호박죽을 끓여도 좋겠고, 고소하게 호박전을 부쳐도 되겠다. 잘 말린 호박고지는 겨우내 식재료로 두루두루 유용할 것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넉넉하다.
여름철 싱싱하고 풋풋하게 열리는 애호박이 생명력 넘치는 첫물이라면, 햇볕과 바람을 온전히 견뎌내며 껍질이 단단해지고 노란빛이 짙어진 늙은 호박은 끝물의 결실이다. 첫물도 반갑고 좋았지만, 끝물은 넓적한 모양부터 편안하게 마음을 보듬어준다.
맑은 초가을 햇살 아래, 늙은 호박을 품에 안고 흐뭇하고도 뭉클한 건 나도 끝물이라서 일까. 나를 보듯 늙은 호박을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골진 모양과 은은하고 부드러운 가을빛이 반짝이던 초록 못지않게 아름답다. 잘 익은 것일수록 빛이 발한다.
늙은 호박은 이름이 주는 쓸쓸함보다는 속살로 만든 호박죽의 따습고 달달함이 먼저 떠오른다. 즉, '늙다'는 표현은 쇠퇴가 아니라 성숙의 의미로 깊은 맛을 보장한다. 그래서 늙은 호박은 애잔함보다는 고마움과 든든함으로 다가온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삶의 종착역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서글픈 일 같지만 이 유한성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소중하게 만드는 선물일 수 있다. 시간의 끝이 보일 때,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 얼마나 기적 같은 것인지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매 순간이 감사한 일이다.
나는 오늘, 두 팔 벌려 호박을 수확하며 가을을 맞이했다. 또 한 번의 가을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