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꽃이 피었다
연일 버티기 힘든 용광로 같은 날씨에 달력은 시치미를 뚝 떼고 가을의 시작을 말한다. 역대 가장 더운 입추, 그래도 두 글자가 반갑다. 지독한 폭염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로 같다. 절기의 변화가 와닿진 않지만 지악스러운 더위도 결국은 지나갈 거라는 위안이 숨통을 트이게도 한다.
덥다고 며칠간 도서관에서 보내다 오랜만에 들어선 속달동 마당은 쑥대밭을 방불케 했다. 마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 훅 덮쳐오는 열기에 거대한 사우나가 따로 없다. 예상은 했지만 풀에 완전히 점령당한 마당과 화단, 텃밭을 보자 뭐부터 손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고 열탕 속으로 뛰어들었다.
남편은 내내 잔디를 깎고, 나는 일단 목말라 신음하는 화초에 물부터 주었다. 초대하지 않았어도 무성하게 자리한 쇠뜨기, 바랭이, 쇠비름, 환삼덩굴들과는 힘겨운 씨름을 했다. 땅속 깊이 파고든 불청객들의 억척스러운 생명력과 싸우는 일은 여름마다 시험에 들게 한다.
그럼에도 한줄기 갈바람으로 마냥 행복해할 시간을 떠올리며 불가마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무시무시한 풀더미 속에는 이미 가을의 전령사들이 보였다. 폭염의 절정 속에서 절기상 입추를 맞이하는 역설적인 상황처럼, 여름의 가장 뜨거운 순간에 과꽃이 배시시 웃고 있는 게 아닌가.
온몸이 땀범벅이 된 채로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연보라, 분홍, 그리고 짙은 자줏빛까지 저마다의 색을 품은 꽃잎들이 수줍게 고개를 들고 가을을 부르는 모습이 얼마나 반갑던지.
연보라 쑥부쟁이 작은 꽃잎도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초록 꽈리들 사이로 익어가는 주황빛도 보였다.
절기란 계절의 겉모습이 아닌 속내를 먼저 읽어내는 법이다. 잎사귀 하나가 떨어지며 세상에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는 '일엽지추(一葉知秋)' 처럼, 과꽃의 섬세한 꽃잎 하나하나에는 이미 깊어질 가을의 서정이 담겨 있었다.
울타리에는 맷돌 호박이 물들어가고, 수세미꽃은 담장 너머로까지 형광빛 노랑을 펼치고, 메리골드도 현란한 색감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계절은 조용히 다음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계절은 여전히 여름의 한복판이지만 자연은 이미 나지막하게 가을의 첫인사를 건넨다.
가장 눈부시고 치열하게 타오르는 순간이야말로 식어짐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을 무더위에 맞는 입추가 말해준다. 우리네 인생살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찬란하게 불꽃을 피워낸 뒤에는 정적과 고요의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식어짐이 완전한 끝이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불꽃이 지나간 자리에 단단한 숯이 남듯이 인생의 식어짐 역시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성찰의 시간이 된다. 타오름의 순간도, 식어가는 정적의 시간도 모두 삶을 완성해 가는 소중한 과정이다.
몇 시간의 수고로 잔디는 정갈하고, 화단은 제법 말끔해졌다. 그 위로 뭉게구름이 유난히 몽실몽실하다. 비록 살갗에 닿는 공기는 여전히 뜨겁지만, 곧 찾아올 맑고 높은 하늘을 기다리며 마음 한구석에 작은 바람길 하나를 내어본다.
조금만 더 힘내서 이 여름의 끝자락을 잘 건너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