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 못 하는 의욕, 너는 네가 완벽하다 생각하니?
나는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 왔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에는 유난히 공을 들인다. 대충 해치우는 것을 싫어하고, 필요한 물건은 빠짐없이 갖춰져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약속이 있다면 이동 시간을 계산하고, 그 시간에는 돌발 상황까지 조금 얹어둔다. 무슨 일을 하든 순서가 있고 절차가 있어야 한다. 하나를 건너뛴 채 다음으로 넘어가면 몸 어딘가에 단추 하나를 잘못 끼운 듯 영 개운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는 정작 주변을 완벽하게 정돈하며 사는 사람은 아니다.
어머니는 아주 깔끔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먼지 한 톨도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물건은 있어야 할 곳에 있었고 집 안은 늘 반듯했다. 친정오빠는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집이 조금 어수선한 것은 견딜 만했다. 그렇다고 물건이 아무 데나 있는 것은 또 싫었다. 필요한 순간 필요한 것이 제자리에 없으면 몹시 신경이 쓰였다.
나는 내가 좀 모순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완벽주의자라면서 왜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을 만들지는 않는 걸까.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내가 집착하는 것은 ‘깔끔함’이 아니었다.
나는 빠뜨리는 것을 싫어했다.
정확히는, 빠뜨린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견디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나니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나의 행동들이 한 줄로 이어졌다.
어떤 일을 앞두고 있으면 필요한 것을 미리 갖춰놓는다. 하나라도 없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시간은 대강 짐작하는 것으로 부족하고 계산되어 있어야 한다. 일에는 단계가 있어야 하고 그 단계가 제대로 밟혔는지도 중요하다.
익숙지 못한 장소엔 반드시 먼저 가본 후에야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선다 낯선 길 위에 선 어정쩡한 내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바카라을 읽을 때도 다르지 않았다.
한 권을 다 읽으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때부터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의 다른 작품은 무엇인지, 이 작품이 쓰인 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사조와 연결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궁금해졌다. 관련된 바카라과 자료를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이것을 오랫동안 지적 호기심이라고만 생각했다.
물론 호기심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안에 다른 마음 하나가 숨어 있었다는 것을 안다.
(바카라 속에 지성이 과시되는 것은 싫어하지만, 지식이 인물의 삶과 성격 속에 스며들기를 바랐다. 주로 인물 내면 중심의 소설을 선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
혹시 내가 중요한 것을 놓친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었다.
알고 싶어서 찾아가는 것과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찾아가는 것은 얼핏 비슷하다. 하지만 둘의 마음은 꽤 다르다. 하나는 앞으로 끌어당기고, 다른 하나는 뒤에서 밀어붙인다.
나는 자주 뒤에서 밀렸다.
물건을 살 때도 그랬다. 한번 원하는 것이 생기면 집요하게 찾아다녔다. 검색하고 비교하고 다시 확인했다.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계속 건드렸다. 그러다 마침내 손에 넣으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토록 원했으니 오래 들여다보고 아껴야 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어떤 것은 아무렇게나 던져두었고, 어떤 것은 상하지 않도록 곱게 모셔둔 뒤, 그 존재 자체를 잊어버렸다.
예전에는 이 변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갖고 싶어 했으면서 왜 얻고 나면 시들해지는 걸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물건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없다’가 ‘이제 있다’로 바뀌는 순간.
내가 찾던 것은 그것이 주는 안심이었을 것이다.
사람 앞에서는 이 성향이 조금 더 까다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결과물에 작은 결함이 있다는 사실보다 그 결함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렵다. 내가 모르는 것을 누군가 알고 있거나, 내가 뒤처졌다는 느낌이 들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남보다 조금 앞서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비로소 하루가 만족스러울 때도 있다.
이 대목에서는 완벽주의라는 말 뒤에 숨을 수만은 없다.
잘하고 싶은 욕망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은 같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실수까지 견디기 어렵다면 그것은 완성도를 향한 욕망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내 실수를 알아보는 순간 유독 견디기 어려워진다면, 그곳에는 타인의 시선도 있다. 완벽하고 싶은 마음만이 아니라 허술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가능하면 조금 더 앞에 서고 싶은 마음도 함께 있다.
인정하기 썩 편한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에 드는 모습만 골라 이름 붙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어떤 순간에 날카로워지고, 무엇을 얻기 위해 집요해지고, 무엇이 충족되어야 비로소 안심하는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에 더 가깝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완벽주의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나는 완벽한 것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 남겨두는 것을 어려워했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채웠고, 확인했고, 준비했고, 찾아다녔다.
혹시 빠뜨렸을까 봐 한 번 더 살펴보고, 모르는 것이 남았을까 봐 한 번 더 읽었다.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의 기쁨조차 어쩌면 소유의 기쁨보다 결핍이 사라졌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세상에는 전부 갖출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특히 앎은 그렇다.
바카라 한 권을 읽으면 한 권만큼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열 권의 입구가 생긴다. 한 사람을 이해하면 그 사람을 둘러싼 시대가 나타나고, 시대를 들여다보면 역사와 사상과 예술이 따라온다. 모르는 것을 없애려고 공부할수록 오히려 내가 모르는 세계의 크기만 선명해진다.
그렇다면 ‘빠뜨린 것이 없어야 끝낸다’는 나의 오래된 규칙으로는 영원히 끝낼 수 없는 셈이다.
이제는 다른 종류의 완벽함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을 갖춘 뒤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채로 출발하는 것.
모든 것을 이해한 뒤 바카라을 덮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남겨둔 채 마지막 장을 덮는 것.
가능한 자료를 전부 찾아본 뒤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아는 만큼으로 문장을 끝맺는 것.
그리고 누군가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나의 부족함으로 번역하지 않는 것.
생각해 보면 삶에서 정말 어려운 것은 빈칸을 모두 채우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채우려 들면 어떻게든 채울 수 있다. 더 준비하고, 더 찾아보고, 더 공부하고, 더 소유하면 된다.
더 어려운 것은 빈칸 하나가 눈앞에 있는데도 그대로 두는 일이다.
모른다고 말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두고, 충분히 했으면 그 자리에서 손을 놓는 것.
나는 평생 빠뜨리지 않는 법을 익히며 살아왔다.
이제 남은 공부는 어쩌면 그 반대편에 있을 것이다.
하나쯤 빠뜨린 채로도 평온할 수 있는 사람.
완벽함에서 조금 멀어지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나를 몰아붙이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조금 가까워지는 일.
요즘 나는 그쪽의 완성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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